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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27. 2019

나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 우린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고를 친다.


“실장님이랑 한 작품이 제 첫 작품이어서 ㅠㅠ

제가 부족함이 많아서 실장님께서 많이 힘드셨겠지만,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J의 카톡을 받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이 친구에게 이런 카톡을 받을 만한 선배였던가?'

 



회계파트를 담당했던 친구가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크랭크인 2주 전이었다. 한 달 동안 결혼 준비로 남편과 싸우면서 일에 지장을 주었을 때도, 한참 바쁜 시기에 신혼여행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자리를 비웠을 때도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퇴사는 의논이 아닌 통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곳이 답답하다’였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그 친구를 믿었던 나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잡을 이유 없었다.


떠난 친구 대신 뒤늦게 합류하게 된 팀원이 J였다. J는 독립영화에서 프로듀서까지 했지만 상업영화 하고 싶어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31살이라는 나이는 막내로, 신입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고 우리 작품에도 여러 번 이력서를 넣었지만 미팅까지 연이 닿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J는 미팅만으로도 한껏 상기되어있었다. J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진 지만 J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간절함이 있었다.


어렵게 주어진 기회였기에 J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열심! 이 좋은 결과까지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나는 같은 실수에는 3번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같은 실수를 3번 이상 하면 그건 할 마음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는 그 일을 맡기지 않는다.


정신없는 아침, 출근했더니 J가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 그만두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물 한잔을 가지고 회의실 테이블에 앉았다. J는 더듬더듬 3번째 실수를 고백했고,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또 틀려? 큰 실수라면 차라리 할 말이라도 있지"

“전 지금까지 제가 일을 못하진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전 정말 멍청한가 봐요”

"나 고작 이런 일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해”

“(입술을 깨물며) 네, 저도요”

“너 지금 울면, 나 너 안 본다”

“저한테 화가 나서 그래요”

“그럼 일어나! 처음부터 다시 하자”  

     

J가 3번이나 한 실수는 어이없을 만큼 간단한 일이었기에 화가 났지만, 밤을 새운 듯 헝클어진 머리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며, 자신에게 화가 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J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났다. J가 너무 귀여워서! 

그리고 10년 전의 내가 생각나서! 지금 J가 느끼는 감정은 나도 수없이 겪어 본 감정이었다. 또다시 발등 찍힐까 봐 마음 주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이런 친구를 만나면 더 가르쳐주고 싶은 의지가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나는 ‘나의 사수’ 덕분에 영화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영화일은 딱 1년만 하고 그만뒀을 거다.

영화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었던 터라 딱히 영화일에 대한 열정은 없었지만 그의 잔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그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가 영화일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영화일을 하고 있다.


나의 사수를 만나기 전, 나는 20살부터 여러 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기에 내가 제법 일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일은 생소해도 너무 생소했다. 사수는 당시 기획안이 뭔지, 엑셀이 뭔지도 모르는 내게 툭툭- 서슴없이 일을 던져줬다.

“저...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해보면 되겠네!”


‘으응? 뭔 소리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떻게 해?’

지식인에 물어봐도 당최 모르겠고,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봐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하라니까!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끙끙대며 주구 창창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 내가 그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수가 있었다. ‘제발 집에 가세요!’라고 애원해도 가지 않고, 늘 한결같이.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때 방법을 알려줬으면 제가 그렇게 밤을 안 새도 됐을 거예요!”

그럼 나의 사수는 이야기한다. “쉽게 얻은 건, 네 거가 되기 힘들다니까!!”


내가 고지식한 건 아무래도 내 사수를 닮았나 보다. 시간이 지나 내가 여러 후배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는 어떻게 '나 같은 아이'를 끌고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존경심마저 든다. 그렇다고 그의 방식이 100%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좋은 선배일까? 그건 자신이 없다.

     



그때는 몰랐다.

- 툭툭 서슴없이 일을 맡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일을 맡기는 선배와 일을 혼자서 다 하는 선배 중 누가 '좋은 선배'일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일을 맡기는 선배'다. 일을 맡겨보니... 일을 맡기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저 친구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일을 맡기지 않으면, 그 후배는 하던 일만 계속하게 된다. 물론 그럼 하던 일은 잘할 수 있게 되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그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실제로 경력은 쌓였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지 할 일을 나한테만 맡기는 선배들도 있다. 그런데 그 일 언젠가는 나도 하게 될 일이다. 욕은 좀 나오겠지만 미리 배운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할만하다. (나의 사수는 언제나 내 직책보다 +2만큼 일을 더 줬다. 그래서 그때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내가 의도치 않게 진급을 빨리하게 되었을 때 많은 도움이 됐다.)


-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일을 진행할 때 각자가 생각하는 데드라인은 같을 수가 없다. ‘이 정도면  했겠지?’ 생각하고 기다리지만, 그 타이밍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늦다. 그럼 나는 초조해진다. 나도 정리하고 보고를 해야 하는데 내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다 해버리고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혹은 그녀가 일을 다 끝낼 수 있을 때까지 들썩이는 엉덩이를 꾹 누르고 기다린다. 물론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함께’ 있다 보면 풀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막내 때는 일을 배우느라, 선배가 돼서는 후배가 일을 끝내길 기다리느라 퇴근이 늦어진다. (가끔 기다리는 동안 뜻밖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뜻밖의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 아직도 가장 어려운 일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나의 사수는 실수하더라도 '혼자서' 길을 찾고, 끝까지 해내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먼저 내 경험과 시행착오들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샘플들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을 찾아가기를 기다린다. 내 방법은 시간을 절약해 주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쉽게 배운 만큼 쉽게 잊어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방법'을 다르게 적용해 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아직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일이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쉽다. 그런데 직접 해보면 그 쉬워 보였던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단지 해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실력도 쌓인다.


#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이해가 될 때까지!!

나는 '왜요?'라는 질문을 많이 다. 그럼 나의 사수는 ‘너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라고 툴툴거리면서도 내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곤 했다. 이해하고 일을 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건 업무 능률에서 확연차이가 난다. (물론 눈치 없이 정신없이 바쁠 때도 '왜요?'를 물어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될까? 싶은 것까지! 이해가 될 때까지!! 뭐든지 물어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이것도 몰라?’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모르고 사고 치는 것보다 를 귀찮게 하는 게 낫다. 그게 비록 오늘 점심메뉴만큼 사소한 일일지라도!


# 우린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고를 친다.

이번 작품은 계속 호흡을 맞췄던 팀원들이 아니라 모두 처음 겪어보는 친구들이었다. 서로가 ‘처음’인 것은 나도 그렇고,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기준과 경험이 '많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서 늘 실수가 일어난다. 그 간격을 줄여나가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길이다.

경력이 쌓였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나 역시도 10편의 작품을 했지만 그럼에도 아차! 싶을 때가 많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사고를 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J처럼 함께 일했던 후배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내 앞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느라 급급해 작품이 끝나면 늘 후회뿐인데 다른 작품에 들어가서 '생각이 났다'며 연락을 해 올 때면 무슨 상금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누군가 지금 당장 영화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수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막내일 때는 언제쯤 선배가 될까 싶었는데 선배가 되고 보니 막내였을 때가 그립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기에 '지금은 좋은 선배가 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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