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 드라마 <인간 수업>
이제야 <인간 수업>을 봤다.
"볼만한 드라마 뭐 있어?"라고 물을 때마다 이 드라마를 추천받았지만 <고등학생 포주 이야기>라는 말에 미뤄두고, 미뤄뒀으나 '나 빼고 다 본 드라마'인 것 같아 결국 지난주 일요일 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최근 핫한 사건 때문에 더더욱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도대체 이 소재를! 드라마로!! 어떻게 보여줄 건데?!"라는 나의 어쭙잖은 걱정을 단숨에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한 회 한 회가 처절했다. 그렇게 출근해야 한다는 머릿속 울림과 반대로 내 오른손은 계속 다음화, 다음화를 누르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인간 수업> 스틸 컷
드라마 <인간 수업>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포주가 된 지수의 일상에 현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주가 되려는 규리가 끼어들면서 어긋나고 꼬이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 드라마 <인간 수업>의 캐릭터 소개와 스토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진한새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아주 평범해 보이던 친구가 담배를 불법으로 파는 모습을 목격한 뒤 <인간 수업>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보이는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보다,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상을 벗어나는 뜻밖의 행동을 하게 되면 "이 사람이 이럴 줄은 진짜 몰랐다!"라며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하고, 욕을 쏟아붓는다.
<인간 수업>의 지수와 규리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이 그러했다.
* 오지수
지수는 특별히 사고 한번 친 적 없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집을 나간 부모 때문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조건만남을 알선하는 브로커, <삼촌>이 되기로. 사람들은 '나쁜 짓'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지수에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이 휴대폰을 잃어버리면서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이 되어간다. 피하려고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내던져질 뿐이다.
* 박규리
규리는 질투가 날만큼 다 갖춘 학생이다. 얼굴도 예쁜데 머리도 좋고, 거기에 집까지 부자, 심지어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들도 많다. 남들은 죽어라 노력해도 갖기 힘든 걸 모두 다 갖고 있다.
하지만 규리는 부모의 강압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세계가 숨이 막힌다. 그러다 우연히 지수의 '사업'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 지금 서 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수의 '사업'에 끼어든다. 하지만 규리의 선택들은 결국 지수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혼자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지수도, 강압적인 부모를 만난 규리도
'원래 그런 애들이 아니었는데... 그들이 처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인간 수업>을 보고 있노라면 회를 거듭할수록 어딘가 불편하고, 답답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삼촌(포주)'이 되어버린 지수 때문일까?
강압적인 부모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수가 하는 일에 끼어든 규리 때문일까?
무능력한 어른, 학교, 사회 때문일까?
이 드라마가 단지 드라마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라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드라마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이면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
지수와 규리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았다는 사실을.
일이 꼬이고, 결국 손댈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때 지수와 규리는 멈출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비록 그들이 원한 '최선'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택들 중에서 지수와 규리는 각자 '자신들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아이들에게 "정말? 그게 최선이야?"라고 묻기라도 하듯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지수와 규리는 '자신들의 위한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 선택들들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선택들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이 끝이 온통 핏빛으로 치닫은 건 그들의 '선택' 때문이다.
그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들의 처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건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지수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규리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혹들을 만난다. 그리고 선택한다.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을 지키며 살 것인가?
모른 척 함으로써 지금보다 좀 더 편하게 살 것인가?
형태는 다르지만, 우린 모두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늘 수많은 유혹 앞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또다시 선택한다.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것인지, 덮을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멈출 것인지!
누군가의 권유로 인한 선택도
어쩔 수 없는 선택도
결국 선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다.
그러니까 그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 역시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