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와 유독 각별했다. 스무 살에 나를 낳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인지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자란 탓에 엄마에 대한 마음이 유독 애틋했다. 그리고 스무 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 애틋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다. 그렇게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엄마는 나에게 여전히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에 반해 아빠는 어린 시절은 바쁘다는 핑계로 늘 집에 없는 사람이었고, 철이 들면서부터는 집안의 사고뭉치였다. 아빠 덕분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싶으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고를 쳐서 중고등학교 때는 교복 살 돈도 없어서 여기저기서 교복을 얻어 입으며 겨우 겨우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아빠는 내 인생에서 부디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1 때, 아빠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쳤고, 그 사고를 계기로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다. 그렇게 내 삶에서 드디어 아빠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스무 살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빠가 다시 나타났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아빠가 정신을 차린 줄 알았지만.. 3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빠는 엄마의 보험금으로 반지하방에서 겨우 벗어났던 우리의 집문서를 들고 도박을 했고, 그 바람에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엄마가 없는 스무 살 이후 그때의 내 인생은... 그놈의 피붙이, 혈연관계가 족쇄처럼 떨어지지 않으며 나를 갉아먹었고, 아빠가 언제든 갑자기 연락을 해서 감당할 수 없는 폭탄을 투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연속이었다. 그런던 어느 날, 아빠로부터 그녀를 소개받았다. 그녀는 오랜 세월 시장에서 장사를 해 온 탓인지 거칠고, 쎄 보였다. 그러니까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아빠가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새로운 폭탄이 아니기만을 바랬다.
그녀를 소개받고, 그 뒤로 일 년에 한두 번씩 아빠를 만나러 갈 때마다 그녀를 보게 됐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인사 외에 별다른 안부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으며, 장사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야 합류한 그녀는 언제나 밥 대신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그녀를 만난 지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그녀가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동생으로부터 종종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을 하고, 두 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단다. 거친 시장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억척을 부리며 살았다고. 그러니까 소주 한잔도 못 마셨다던 그녀가 밥 대신 소주를 먹게 되는 데까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을 거다. 그제야 거칠고 무뚝뚝한 그녀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분홍색 장미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러니까 60을 넘긴 나이에도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손님이 없어 장사가 어려워지자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설거지까지 한다고 한다. 젊은 사람도 힘들 텐데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싶지만... 젊어서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을 한다는 그녀의 '책임감'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책임감'이 없는 아빠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남동생에게 그녀에게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고생한다.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아빠는 '당연한 걸 굳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며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아빠와 전화를 끊고, 그녀의 겪고 있을 힘듦 뿐 아니라 외로움까지 생각하니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이만큼 시간이 지나서인지,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서인지, 그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서인지... 점점 그녀를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는 새어머니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나의 낯선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되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거 같다. 그러니까 얼마 전 아빠가 또다시 사고를 쳐서 남동생에게 사고 수습을 부탁했었다. 나는 이번 일로 또다시 이전의 악몽들이 시작되진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 할아버지 제사에 다녀온 남동생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나와 남동생은 사고를 치지 않고 지냈던 지난 시간 동안 아빠가 변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빠는 계속해서 사고들을 치고 있었고, 그녀가 그 모든 사고들을 수습 해온 것이다. '혼자서...'말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지도,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아빠를 놓아버리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바보 같은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녀는 지금도 전쟁터 속에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리고 '펑-' 소리만 나도 놀라는 나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야 돌이켜보면 나는 그녀가 쳐준 울타리 안에서 지난 10년 동안 편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아빠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만큼 그녀에게 고맙고, 화가 나고, 미안함을 넘어선 애틋한 마음이 든다.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 애틋함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진 것처럼 그녀의 삶도 이젠 애틋하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는 그녀의 삶에,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지만... 나란 사람은 정작 그녀를 보면 '엄마'라는 말이, '어머니'란 말이 목 끝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전하지 못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 이젠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비 온 뒤에 무지개처럼
그녀의 삶이 앞으로는 좀 더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