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지만 집에만 있었더니 푸석푸석 산소가 부족해지고, 기분도 가라앉는 것 같아 오랜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커피숍에 갔다.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한적한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따뜻한 라떼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마음을 '토닥토닥' 달래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를 충전하는 중에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커피숍"
"지금 갈게요!"
이렇게 갑자기? 후배는 1시간도 안 지나 추워서 벌게진 두 볼로 내 앞에 앉아 방금 미팅을 하고 왔노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소문'이 안 좋은데 괜찮을까요?
사실 이 후배에게 작년 한 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촬영을 하고 있던 작품을 그만뒀고, 초저예산이긴 하지만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후배를 설득해 참여한 작품은 감독이 후배의 등에 직접 칼을 꽂아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팅한 작품은 엊그제 나도 궁금해서 시나리오까지 구해 읽었을 만큼 좋은 감독에 캐스팅부터 투자, 제작사까지 이 시국에 만나기 힘든 좋은 작품이었다. 내가 그 작품을 미팅한 것보다 더 기뻤다.
"너무 좋은데? 그런데 뭐가 고민이야?"
"거기 부장이... 소문이 안 좋은데 괜찮을까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우리가 만난 장소가 합정역, 커피숍인지라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좀 더 은밀한 장소인 우리 집 근처 돈까스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사실 여기 지금은 사람이 없지만... 예전엔 줄이 어마어마했던 곳이야~"
"앗~ 저도 알아요. 근처에 올 때마다 궁금했어요!"
맛있다고 '소문'난 돈까스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소문'이 안 좋은 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후배는 작년 한 해 계속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이번 선택도 잘못된 선택일까 봐 두렵다고 했다.
"돈까스는 어때?"
"나쁘진 않은데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그러네. 하물며 돈까스도 먹어봐야 알아!"
나는 후배에게 L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L부장은 얼마 전부터 출근을 시작한 친구다. 오랜만에 하는 영화일이라 열정 가득했던 L부장은 출근과 동시에 팀원들을 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으나 미팅 후 몇 번이고 거절 통보를 받아야 했단다. 함께 일하지 못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답답함에 추적해보니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하고 있는 H부장 때문이었다고.
"H부장이 '소문'이 안 좋은 사람이라 같이 일하기가 싫다네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H부장이 궁금해서 이전 작품을 보니 함께 일했던 조감독이 아는 사람이라 바로 연락 해봤다.
"H부장 없었으면 현장이 안 돌아갔어. 완전 추천!"
분명 같은 사람을 두고, 너무 다른 평가였다. 사실 나도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내가 첫 실장을 한 작품에서 나 때문에 팀원들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같은 사람이라도 작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이유로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처음부터 나랑 착착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그리고 이 후배 역시 처음엔...(굳이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작품을 무사히 끝낸 지금은 함께 일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언제든 불쑥 찾아와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물론 후배와 함께하는 부장은 작품이나 상황 등과는 상관없이 진짜 아닌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일이 힘든 건 그래도 견딜수 있지만 사람이 힘든 건... 나 자신을 무너지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겪어보지 않은 '사람' 때문에, '소문' 때문에 좋은 작품,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는 건 진심으로 아쉬웠다.
"어쩌면 이 사람을 만나려고 네가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나보다!"
후배가 작년 한 해 일을 그만둔 원인은 모두 '사람' 때문이었다. 그들이 후배가 만난, 만날 '진짜왕'들은 아니겠지만, 연속으로 안 좋은 사람들을 겪은 아픈 경험들로 후배는 분명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그러니까 '소문' 때문에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이 작품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부딪혀 봤지만 그래도 버티기 힘들다면 그때 그만둬도 괜찮다고.
"그러다 앞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해요?
"너 이 작품도 소개로 미팅한 거라며? 너란 사람을 똑바로 봐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