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 할 거 같아요.”
함께 작품을 했던 후배로부터 불쑥 전화가 왔다. 욕심도 많고, 자존감도 강한 녀석인데 엄청 서럽게 울어댔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녀석이 말하는 '무리한 스케줄과 무례한 사람들'에 대해 들었다.
'어딜 가나 미친년 놈들은 있기 마련이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만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네가 하고 싶었던 작품이니까!'
'끝까지 하고 나면 분명 얻는 게 있을 테니까!'
'넌 잘할 거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봐”
해결책보다는 녀석이 알만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지만, 녀석은 킁- 하고 코를 크게 풀더니 '버텨보겠다'라고 말했다. 녀석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몇 년 전에 비슷한 상담을 했던 후배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지금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우울증이 심해졌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마음의 병뿐만 아니라 몸까지 망가졌다. 결국 그녀는 영화일을 그만뒀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됐다. 그때 그녀가 '힘들다'라고 말했을 때 '그만둬도 된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버텨봐'라고만 말했던 것이 내내 마음이 아렸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건가요?
27살, 내 3번째 작품은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였다. 추운 겨울이었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촬영이 계속됐다. 결국 같이 일하던 친구가 눈물이 뚝뚝- 떨어진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졌다. 1명이 그만뒀는데 남은 사람들은 2배, 아니 4배의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그만 둘 타이밍을 놓쳤고, 버티다 보니 촬영이 끝났다. 그때 몸이 엉망으로 망가졌다. 더 이상 영화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화일을 그만두려고요.”
“큰 작품 하나만 더 해. 그러고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그만둬”
저예산 영화를 함께 했던 작전동 피디님은 지금 그만두면 미련만 남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한 작품만 더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피디님 말이 전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일단 피디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이름만 말해도 모두 알만한 감독의 작품을 하게 됐다.
이름만 말해도 알만한 그 작품은 100억이 넘는 예산이었고, 일의 강도도 10배가 넘었다. 그런데 첫 월급이 나왔을 때 저예산 영화와 같은 금액을 받았다. 면접 때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른 금액이라 그 이유를 물었다.
“요령 없기는, 네 월급은 네가 알아서 챙겨 가”
그랬다. 그 작품의 윗분들은 나와는 조금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제가 한 팀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워요. 그만두겠습니다.”
그 작품이 50% 정도 진행됐을 즈음 작전동 피디님을 다시 만났다. 남양주에 있는 한식당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만둔다고? 그럼 나는 네가 부끄러울 것 같아! 그만둔 사람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아.
결국 남은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지. 그렇게 만들지 마. 네 환경을 바꿔보려는 노력은 해봤어?”
'쉽게 말하지 마! 내가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나 참고 있는데?!'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그 피디님을 존경했다. 피디님 말이 전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피디님이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놔두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저 혼자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제 일을 도와줄 사람을 뽑아주세요”
“그 일을 너 혼자 하는 게 더 신기했어”
그 뒤 도와줄 사람을 뽑았고, 나는 남은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작전동 피디님의 말은 옳았다. 끝까지 했더니 그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자격이 생겼고, 그 작품이 끝나자 다른 작품들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작품에서 만난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때 나는 버텼기 때문에 얻은 것들이 많았다.
30살, 뜨거웠던 여름 처음으로 작품 중간에 일을 그만뒀다. 당시 라인 피디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포츠 영화라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일하던 부장을 잘랐다. 자기 욕을 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하지만 나는 그 작품을 좋아했다. 그래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내 책임이 아닌 일까지 떠넘기기 시작했다. 참고, 참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촬영 현장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할 거 같아요. 그만두겠습니다.”
중재에 나선 제작 피디가 잠시 숙소에 가 있으라고 해서 촬영 현장을 나왔다. 그리고 내가 달려간 곳은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다음 날 촬영 예정인 장소의 담당자였다. 무슨 일이냐며,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다는 거다. 떨어지는 링거 수액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병원을 나와 숙소에 가서 가방을 싸고 택시를 탔다. 부산역에 도착했지만 누군가 발을 붙잡기라도 한 것처럼 발이 무거웠다. 해가 질 때까지 부산역 벤치에 앉아있다 서울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장소 담당자에게 연락을 한 건 라인 피디였다는 걸 알았지만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촬영은 끝내야 했기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사무실로 갔다. 맡았던 일을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하고,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작품을 그만뒀다.
그 작품은 90% 이상 촬영을 했지만, 그만두니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쏟아부었던 내 열정과 시간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만두고 나니 다시는 영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작품이 끝나는 날 함께했던 스태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말 수고했어”
눈물이 났다. 그곳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영화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때 나는 그만뒀기 때문에 배운 것들이 많았다.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
나 역시 아직도 새로운 작품이 들어갔을 때, '상황과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땐 고민한다. '그만둬야 할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지금은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게 되는 고민이지만 이 고민에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알게된게 있다면 나는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었고, 내가 그만뒀을 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버티느라 힘든 친구들에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들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그만두려는 친구들에게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버티는 건 힘들지만, 버티고 나면 얻는 것들도 많다.
그만두는 건 힘들지만, 그만두고 나면 얻는 것들도 많다.
버티는 건 누군가가 버티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버티고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 성격, 경제상황 등이 모두 다르다. 언제까지, 얼마나 버티느냐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든데 '무조건 버티는 것'은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 1년 후, 10년 후를 위해서 버티다 2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만둬도 괜찮다. 지금 당장은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길 끝에 서면 또 다른 길은 항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