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마음으로 쓰는 여행의 요약본
2022년, 이탈리아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
내가 스페인에 살던 2015년부터 한국에 돌아온 2018년까지 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참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러던 중에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어 공부의 목적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가기도 했었다.
매달 그렇게 영국으로, 파리로, 덴마크로 열심히 떠났다.
스페인에서 거주하던 시절, 사실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쓸데없는 망상을 왜 했지! 참 친절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이 서투르게 한국말을 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려운 언어임에도 한마디라도 하려고 하는 그 모습들이 참 대단해 보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스페인에서 살았던 시기가 마냥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학연수 기간 동안 평생 기억할 소중한 기억을 많이 만들었다.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최고의 날들.
노르웨이 친구들과 본 일출, 처음 해보는 해변에서의 물멍, 점심 후의 낮잠, 성탄절에 가족과의 식사 같은 소소한 것들.
취업 준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던 시기다.
세상이 이렇게 넓었나.
당시에는 이곳저곳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사실 어딜 가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2019년 한국에서 취업을 한 뒤 떠난 첫 휴가.
그때 갔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나는 잔잔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물론 달랐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풍경이라 그런지 내 마음에 어떤 바람도 불지 않았다.
휴가에서 돌아와서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일을 했고, 커리어를 쌓았고,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여행을 그리워할 틈 없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직을 하고, 또 적응을 했고,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 길들여졌다.
그러다 문득 올 4월에 해외여행 생각이 나 항공권을 예매했다.
늘 미국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예매한 곳은 또다시 이탈리아.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 내 플랫 메이트였던 이탈리아 친구와 여행을 하기로 한 거다.
2019년에도 이 친구와 밀라노를 짧게 여행했는데, 이렇게 둘이 길게 여행을 하기는 처음이다.
여행에 가기 전까지 일에 치여, 나는 소진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 회의감이 들었다.
일이 나는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일 때문에 힘이 들까.
내가 원하던 삶이 이게 맞을까?
행복한가 지금?
과연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는가?
새로울 것 없이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그런 지경에 왔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빽빽하게 회의가 있었다.
보고 자료를 만들고 미팅을 하고, 공유를 하고, 취합을 하고.
내려오는 일들이 너무 많아 새로운 일을 진심으로 하기기 쉽지 않았다.
마음이 '이러면 안 돼'하고 소리치던 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진짜 쉴 때구나, 하는 마음이 든 다음날이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로 떠나왔다.
남부 휴양도시라 그런지 가족끼리, 연인끼리 모여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래 나에게 중요한 건 '행복'이었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소박하게 나의 할 일을 해가며 하루하루 보내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해변에서 책도 읽고, 와인도 마시고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그런 삶.
꽉 붙잡는 거 없이 좀 힘을 빼고 사는 그런 삶.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침이면 책을 읽고, 조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여행을 하고.
음악을 듣고, 샌드위치를 사서 비치타월을 깔고 해를 쬐는 일.
노을이 질 무렵에는 테라스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조금 느린 서빙에도 주인아저씨와 수다를 하며 밥을 먹는 곳.
문득 나의 삶을 크게 흔드는 그런 크고 작은 생각들이 왔다 갔다 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글로 옮기기에는 그 감정들이 왜곡되고, 꾸며질까 문득 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올해 떠난 여행은 나의 인생 그리고 내 우선순위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나의 연약한 내면을 보듬어주고, 새로운 결심들을 작게나마 떠올려볼 수도 있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가 잘 따르던 상사분이 퇴사를 하게 되셔서 통화를 했다.
"도원님은 맑고 깨끗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좋은 것을 잘 알아보고 그런 것들을 잘 골라주고 이야기해주고, 그런 점이 도원님의 정말 큰 장점 같아요."
내가 떠난 여행에 문득 고마웠던 시간.
넓은 세상에서 보고 온 것들은 나도 모르게, 저 어딘가 쌓인다.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정말 연결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간이 낡아지지 않도록, 여행 동안 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짧게라도 적어놓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면 참 행복할 텐데.
타다닥 타다닥-.
한국에 돌아온 지 3일차.
아직도 나는 여행의 향수에 젖어, 이 향수가 희미해지지 않았으면 기도하는 마음이다.
오자마자 여행 전부터 계속되던 일들에 허덕이며 잔업을 하고 있지만.
시차적응으로 오후에도 커피를 마시며 버티고 있지만.
생각보다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건 큰일이 아님을, 또 많은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새겼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다-.
또 다시 언젠간 휴가를 잠시 내어 여행을 가보리라 하고 비행기를 찾아본다.
소중했던 시간이 희미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어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