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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inseoul Jan 02. 2017

깊어져요, 우리

시간과 함께 낡아지지 말고.

어렸을 때 샀던 DDR 게임 발판은 창고 한쪽에 처박히는 꼴을 면하지 못했다. 물이 들어가 바꾼 핸드폰을 늘 가방 속에 넣어야겠다는 결심도 한 달 후 자전거에서 떨어진 그것과 함께 조각났다. 어쩔 수 없는 걸까, 시간과 함께 낡아지는 것.


스페인에서 일 년이 지나간다.

300 일하고도 반절이 넘는 일수 동안 차곡차곡 글을 써왔으면 좋으련만, 글을 쓰는 동기는 뭔가를 써야만 한다는 동기에 철저히 패배해 왔다. 나는 서울의 추운 겨울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수영복 끈으로 몸에 새겨진 지중해 짠내는 아직도 선명하다. 단지 이곳에서의 날들도 50일밖에 남지 않았을 뿐.


좋은 나라다.

친절한 사람들, 축복된 땅에서 자란 작물들, 빠에야 등의 쌀 요리, 지중해,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위치, 일 년 내내 열리는 축제... 7월에 끝나는 비자를 한국까지 돌아가서 꾸역꾸역 연장해 올 정도였다. 처음에는 말이 안 통했지만,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마음 덕분인지 사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모든 걸 다 배우겠다는 다짐이 한국에서라면 꾹 참지 않았을 것들을 이해시켰다. 마음이 삐죽 대기에는 날씨마저도 좋았다.


여름이 왔다.

흙과 볕이 좋은 덕에 올해 여름은 특별했다.

이곳 사람들은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여인네에게도 무심할 정도로 몸에 대한 특별한 호기심이 없다. 하여 갖춰지지(?) 않은 몸매지만 그냥 해변에서 하염없는 날을 보냈다. 열한 시쯤 슬금슬금 일어나 수영복 위에 옷을 덧입고 자전거로 해변까지 갔다. 선크림은 없지만 선글라스와 에밀 졸라만 있으면 해가 금방 졌다. 어느 날은 모래 위에 수건만 깔고도 세 시간을 자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산 계절 채소에 노른자를 얹어 제일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도 먹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말하는 '가장 보통의 삶'을 살면서 내내 행복했다. 잔인하게 눌러 오른 3등 안의 자리보다 대충 씻은 1유로짜리 체리를 먹으면서 스물세 살까지 나의 행복의 95%가 채워졌다. 행복이란 게 자존감과 함께 가서 내가 행복하니, 나를 사랑하게 되고 타인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 있는 1년 간 가장 크게 얻은 건 B2 자격증이나 배부르게 먹고 지낸 날들이 아니었다. 단지 남 일을 내 일 같이 여기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는 나도 이곳과 함께 낡아지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다소 듣는 '니하오'라는 비아냥거림. 나는 되지만 네가 그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 라며 뻔뻔하게 우기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스페인 사람들의 전형성. 참는 게 미덕이라 배워 입을 다물었건만, 당신의 불만은 하나도 참지 않고 다 터뜨리는 사람들. 너무 느릿하게 흘러가는 일의 속도. 아시아는 VERDE(자연), 동양인은 감정이 없는 바보로 인식하는 데에서 오는 인종차별.  향수보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지쳐 어느 날은 학원 수업 도중 터진 눈물을 참느라 꽤나 힘들었던 적도 있다. 다행히 언어에 대한 갈증은 시간이 지나며 해소되었지만, '나라'를 알게 되니 괜히 소심해도 졌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연인들은 3개월, 6개월, 1년, 3년마다 찾아오는 권태기를 지나며 서로를 이해해간다. 나도 그들처럼 스스로 만든 권태기를 이겨내며 이곳에 적응해갔다. 이곳에 널린 개똥은 짓밟혀도 다시 얹어져 그대로지만, 그동안 낙엽이 졌고 해는 짧아졌으며 기온은 40도에서 14도로 떨어졌다. 그사이 스페인에는 명절이 왔다. 우리나라 설이나 추석 정도로 여겨지는 NAVIDAD(12월 24일 성탄절 전야부터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까지) 기간이다. 다행히 스페인 가족의 집에서 이 기간을 지내게 되어 외로움은 면했다. 처음 보는 여러 가족들과 밥을 먹고, 스페인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웠다. 수영은 못하지만 수영장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와 대화도 나눴고, 핀쵸(바게트 빵 위에 고기나 채소를 얹어 이쑤시개를 꽂은 음식)에 와인을 곁들이며  얼마 남지 않은 이 기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좋은 기간이 오니 어두운 기간은 내가 만든 막힌 굴뚝 때문에 오지 않았나 성찰하게 된다. 내면의 연기를 내보내지 않고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꽉 막힌 검은 굴뚝. 스페인 친구들에게 힘껏 웃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차갑다 믿었던 친구와 함께 10km 마라톤을 하고 있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게 필요했는데 주어진 환경에 매달리느라,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을 놓친 것도 같다.


행복 후 불행, 그 뒤 행복.

대게 고전영화의 공식처럼 스페인 생활의 끝이 보이니 내 생활이 다시 행복으로 향하고 있다. 해서 충분히 닳은 생활, 더 낡아져서 아주 구멍까지 내기는 싫어 미뤄둔 글을 쓴다. 지금 나는 좋은 글은 못 쓰지만, 내면에 눌려 있던 글을 쓸 수는 있으니 최소 행복한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이켜 보자면 헤밍웨이가 생각난다. 그처럼 파리에서 살지도, 그렇다고 이방에서 7년을 산 것도 아니지만 스페인에서 보낸 젊은 날은 내가 어딜 가든 그에게 그랬듯이 내 옆에도 머무를 거다. 처음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달리기 중 내 뒤에 남은 사람을 보며 안도하지 않았으며 사랑도 했다. 늘 뭔가를 성취해야 한다고만 여겼는데 지는 해 속에서도 나는 꿋꿋하고 가장 여유롭게 누워있었다.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
이름붙일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밀려와
나를 쓸어안도록
버려두었네
그토록 오래 물었던 말들은 부표로 뜨고
시리게
물살은 빛나고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주던 파도,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 없었네 내 안엔
너무 더운 핏줄들이었네 날들이여,
덧없이
날들이여
내 어리석은 날
캄캄한 날들은 다 거기 있었네
그곳으로 한데 흘러 춤추고 있었네


ㅡ 한강, <오이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은 모두 어딘가에 촉감으로, 냄새로 살아있다. 단지 나도 모르는 곳에 가라앉아 있을 뿐. 스페인에서의 1년을 내내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 기록에 내 기억이 지배되지 않을 테니 다행이다. 이렇게 흘러가버린 날들 속에 어리석고 캄캄했던 날들이 무수하다. 답답했던 날들이지만 왠지 또 다른 곳에서 힘든 날이 오면 견뎌낼 방법을 알려줄 것 같다. 하여 지나간 그런 날들과 짧게 남은 그럴 날들이 내 서랍 속에서 깊어졌으면 한다.


깊어지자.

시간과 함께 낡아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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