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통역사로 살아남기

왜 계몽기간이 필요한가요…?

by 도도

통역사로 회사에 들어가면 일정 기간 ‘계몽’이 필요하다. 통역과 번역의 차이조차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번역 좀 해주세요.” 하면서 자료를 안 주길래 말똥 말똥 쳐다보고만 있었더니 통역을 해달라는 뜻이거나, 메일로 {통역 요청}이라고 쓰고는 자료를 보낸다. 이건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업에 대한 이해가 없고, 함께 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로 오해나 간극이 생긴다. 이를 메우기 위한 기간, 이걸 계몽 기간이라 부르는 것이다.

통역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준비를 거친 후에 수준 높은 통역이 가능하다. 사전에 회의 자료나 관련 정보들을 가지고 공부하여야 더 정확한 통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기관이나 방송국 등지에서 크고 중요한 행사를 진행할 때 스태프들이 며칠 전 몇 달 전부터 행사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통역사 역시 행사의 취지, 참석자, 자료, 진행 시나리오, 인사말 등등 가능한 많은 자료를 입수하여 통역을 준비한다. 물론 모든 것이 대본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지만 다른 스태프들과 마찬가지로 통역사 역시 짜여 있는 틀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번역기가 번역하듯 통역사도 내용을 인풋 하면 바로 아웃풋이 나온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회의 전 자료를 요청하면 의아해한다. 심지어는 통역사에게 대외비 자료를 보낼 수 없다며 사전 공유를 하지 않는 곳도 꽤 있다.


지금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국제회의 통역사”는 내가 유일했다. 내가 들어오기 전 전임자는 전문 통역사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업무를 위한 여러 가지 세팅이 필요했다. 일단 회의 때 위스퍼링 통역을 하려면 통역사용 마이크와 참석자용 리시버가 필요하여 구매를 요청했다. 위스퍼링 통역이란 소규모 회의의 참석자 중 다수가 한국인이고 소수가 외국인일 경우 회의 진행을 지연시키지 않으면서도 외국인들이 회의를 이해할 수 있게 실시간으로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하는 통역을 말한다. 마이크와 리시버가 없다면 듣는 사람도 통역사도 매우 불편해질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임직원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채용된 인하우스 통역사들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즉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이크와 리시버이다. 구입을 요청했더니 이런 게 있냐며 신기해했다. 거기다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었더니 한국인도 외국인도 회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으면서도 원활하게 진행된다며 감탄을 했다.

통역용 마이크와 송신기
위스퍼링 통역하는 모습. 이렇게 장시간 통역하다가는 통역사는 허리가, 참석자는 목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다음에 필요한 것이 외국인 임직원 PC용 번역기 프로그램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AI는커녕 번역 앱이나 사이트도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라 외국인 임직원 PC에 번역 소프트웨어 설치가 필요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모든 것이 한국어로 진행되는 한국 회사에서 외국인 임직원들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일을 진행할 수 없다. 회사 내 공지 메일, 결재 문서, 각종 회의 자료를 읽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한글 이름을 모르면 메일조차 보내기가 어렵다. 그럴 때마다 통번역사를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구매를 요청하였다. 그랬더니 통역사가 있는데 왜 이게 필요하냐며 반문하였다. 이에 “엄마 있다고 세탁기 안 사나요?”라고 답했다. 완벽히 수긍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구매해 주는 듯했다. 이후 외국인 임직원들이 반드시 필요하고 없으면 안 된다고 하자 비로소 납득을 하는 눈치였다.

위 두 가지가 인하우스 통역사가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세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도 통번역사들을 위한 번역 프로그램 도입, 동시통역 시스템 도입 및 통역부스 구축 등 인하우스 통역사들의 업무를 위한 하드웨어 준비 및 업그레이드는 계속 필요하다.


하드웨어가 갖춰졌다고 해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통역사들의 업무에 대한 이해가 낮다 보니 초기에는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는 회의 자료를 사전에 공유해주지 않아 나만 회의 자료 없이 소리에만 의존하여 통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동시통역의 경우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보통 두 명 또는 세 명의 통역사가 교대로 진행을 하는데 통역사가 나 밖에 없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통역을 해야 했다. 또한 통역을 하며 메모를 한다는 이유로 회의록 작성이 맡겨지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는 인하우스 통역사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업무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나는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추가 채용이 시급하였다. 당장 내가 못 버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근거와 비용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입사하자마자 추가 채용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 혼자 6개월이라는 기한을 정하여 혼자서 참으로 열심히 통역을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구한다고 했던가. 고군분투 끝에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추가로 통역사를 채용할 수 있었다. 이후 위스퍼링 회의 때에는 한 시간 정도 통역 후 교대하고, 동시통역의 경우에는 반드시 2명이 짝을 이루어 진행한다라는 룰을 만들어서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다음은 회의자료인데, 사실 회의 전 자료를 번역하는 것까지가 나의 업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의 자료는 문제없이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하는 시간은 감안하지 않고 회의 시작 30분 전이나 1시간 전에 회의 자료를 송부하는 것이었다. 현업에서야 회의 시작 직전까지 수정을 거듭하여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료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번역하는 시간까지가 모두 회의를 준비하는 시간에 포함되어 있는데 현업에서는 내 작업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의 및 보고 이틀 전까지 번역을 요청해 달라고 사내 전체 공지를 하였다. 처음에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것 같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번역 요청이 올 때마다 번역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인력은 부족한데 번역 요청은 많고 거기다 통역도 해야 해서 이석 시간도 길다, 그러니 제발 최소한 이틀 전에는 보내다오, 그래야 너희들 회의 시간에 맞춰서 자료를 준비할 수 있다고 수없이 설명을 했다. 4, 5년 지나니 많이 정착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100% 지켜지지는 않는다. 긴급 사안과 돌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어떻게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겠는가…


우리 회사에서는 다행히도 일반적인 회의 때 통역사에게 회의록 작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번 회의록 작성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난감했다. 한 번은 그룹 최고경영진 회의에 참석하여 위스퍼링 통역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회의 종료 후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고 연락이 온 게 아닌가. 참석자가 모두 임원들이다 보니 회의록 작성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내 나름 준비라도 했을 텐데 다 끝난 후에 요청을 받은 것이라 정말 머리가 새하얘졌다. 지난번 글에 순차 통역을 하면 메모를 통해 2주 정도는 복기 가능하다고 했지만 동시통역은 다르다. 동시통역의 경우 한 문장에 집중하고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라 전체적인 내용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거기다 메모하는 것 역시 키워드만 적거나 습관적인 끄적거림에 불과해서 메모를 통한 복기도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회의록 작성이 어렵고 내용이 부정확할 수 있다고 여러 번 고사를 했지만 시키면 해야 하는 것이 회사원 아니겠는가. 말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고 회의 내용을 되새겨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중간중간 블랭크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에 살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확히 기억나는 것만 적어 보냈다. 내용이 너무 부족해서였는지 그 이후 동일한 요청을 받은 적은 없지만 최고경영진 회의 참석 시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내 나름 준비는 하고 있다.


지금 회사에서 일한 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통역과 번역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고 처음보다는 일하기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식의 벽에 부딪치고 소수 직종에 대한 몰이해로 힘들 때가 많다. 때론 다른 직원들처럼 나도 사수가 있고 선배가 있어서 그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없는 걸 어쩌겠는가. 내가 누군가의 사수, 선배가 되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덜 억울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가 닦아 놓은 길을 걷고 있을 테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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