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통역사 탓이 아닙니다.
한 교수님이 한일 양국 정부 간 통역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어려운 회의를 잘 끝내고 나왔는데 담당자가 급히 찾아서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갔더니 양국 간에 큰 오해가 발생하였다며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회의록을 다 뒤져서 내용 확인해 본 결과, 통역은 정확하였는데 담당자 오해로 발생한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일본 측에 이 사실을 시인하고 번복할 수는 없어서 담당자는 교수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번 사안은 통역이 잘못 나간 걸로 하죠.”
교수님은 말하는 지금까지도 분하고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걸로 애국했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때만 해도 설마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의심했다. 그런데 현실은 더 녹록지가 않았다.
때는 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체계도 없고, 통역사라고는 나 외에 대학원을 갓 졸업한 후배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AI도 없었고, 동시통역 장비도 없었다. 번역은 “사내(社内)”를 “사내(男)”로 번역하는 소프트웨어로 했고 통역은 혼자서 1시간 반정도 위스퍼링 통역과 순차 통역을 하던 시절이었다. (위스퍼링 통역과 순차 통역을 상황에 맞추어 혼자 한다는 것은 파트너와 교대로 동시 통역하는 것보다 더 빨리 체력이 소모된다.) 거기다 그때는 왜 그렇게 회의가 많고 번역할 자료는 많았는지 온종일 통역하다가 자리로 돌아와서 번역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쌓여만 가던 어느 날, 후배가 통역을 하고 자리에 돌아오더니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후배 왈, 일본인 부사장님이 자료를 빨리 만들어서 다음 회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를 들은 전무님이 번역이 너무 시간이 걸려(심지어 콩글리쉬로 “Translation is too long.”이라고 말했단다.)서 회의가 제때 개최되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눈물이 나는 걸 회의실에서 안 울려고 허벅지 꼬집어 가며 참았다고 했다. 멋있는 통역사가 될 거라 꿈에 부풀어 들어온 첫 직장이 이리도 고될 줄 상상도 못 했던 후배로서는 쉽게 웃어 넘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번역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 사람이 없었으니까. 고작 두 명 있는 통역사는 넘쳐나는 회의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제대로 된 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번역하는데 시간이 너무 든다고 통역사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또 언젠가는 한 임원이 외부 고문인 일본인 두 명에 대한 평가서를 쓴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외부 고문에 대해 한국인 임직원들이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담당이 아닌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문들과 함께 일하는 통역사들 역시 이 고문들과 일하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차치하고, 여하간 그렇다 보니 이 평가서 역시 더 이상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용 중에 “통역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라는 말이 떡하니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평가서를 쓴 임원은 아마도 통역을 거치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표현이 서툴러, 마치 통역에 문제가 있어 소통이 어려웠던 것처럼 작성된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쓰는 건 아니지 않은가. 통역사 덕분에 불가능할 뻔한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것이 무려 2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통역사 통역에 문제가 있어서 소통을 못했다면 결과 평가서 쓰기 훨씬 이전에 문제가 불거졌을 것인데 다 끝날 때나 돼서야 통역을 문제 삼으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화가 많이 났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회의를 하다가 어떤 임원이 어떤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가 있다. 이 의견이 회사의 방침에 반하고, 지금껏 상사가 주창하던 내용과 상반되어 있어 틀렸다고 지적받을 때도 부지기수다. 이때 대부분은 속마음이 어떨지는 몰라도 상사가 지적을 하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역이 잘못되어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혹시 내가 잘못 통역했나라고 생각했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일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진행되는 것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통역을 잘못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또 다른 회의에서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상황에서 “통역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났다. 찾아가서 따질까 아니면 회의 도중이라도 내가 나서서 통역 문제없었다, 제대로 됐다고 말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사람은 그냥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정리가 되었다. 그는 통역을 부정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말을 부정한 것이다. 분명히 그 자리에는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을 것이다. 회사라는 곳이 낮말도 밤말도 쥐, 새 불문하고 다 듣고 퍼지는 곳이라 그의 이러한 발언들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겨지고 또 누군가는 퍼뜨리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그가 이렇게까지 비겁해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통역은 소통을 위한 필수 도구이다. 하지만 허공으로 사라지기에 책임을 전가하기 좋다. 여기서 언급한 일 외에도 크고 작게 통역사 탓을 하는 일들은 넘쳐난다. 그때마다 고민한다. 이걸 나서서 정정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둬야 할지. 지금까지는 나서지 않겠다를 선택해 왔다. 누군가는 왜 이걸 당하고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통역사는 스탭이기에 무대 위에 올라서면 안 된다. 내가 나서서 정정을 하면 스탭이 무대를 뒤집는 꼴이 된다. 이게 내 원칙이다. 물론 무대 위 배우가 스탭 탓을 하지 않는 게 대전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