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가 되기까지 : 착각의 언어
말을 하는 직업을 가져야겠어.
대학 시절 그렇게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부터 통역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조금 더 눈에 띄는 그리고 화려한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땐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
대학을 들어가서 외국어 하나는 해야 한다기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종로에 있는 유명 학원에 친한 친구와 함께 등록했었다.
같이 공부하자던 그 친구는 하루 이틀 빠지더니 결국 다음 달부터 등록을 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냥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다녔다.
3개월 배우고 일본어 능력시험 3급(지금은 N3)을 봤는데 덜컥 붙었다. 남들은 1년씩 공부해도 떨어지는데 3개월 만에 붙다니. 그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단하다고 착각을 한 게…
학원 선생님도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어깨가 한껏 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대학 4년간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설렁설렁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 대학원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취직을 하기 싫었던 나는 그 이야기만 듣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가니 이제까지 잘한다고 생각했던 내 일본어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기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도 가게에서 물건사기에도 내 일본어가 부족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수업시간에 나는 일본어를 다 이해하는 것 같았고 말도 제법 잘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슈퍼마켓계산대에 서거나 누구에게 말이라도 걸라치면 말이 안 나왔다.
답답하고 불안했다. 3개월 만에 일본어 능력시험 3급을 딴 내가, 일본에 간들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던 내가, 실상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일본어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천방지축에 앞뒤 분간 못하는 이제 갓 20살이 조금 넘은 아이였다.
부모님 그늘 아래에서 뭐 하나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배가 고픈데 집에 밥은 없었고, 어지럽게 한 것도 없는데 자꾸만 먼지가 쌓여갔고, 이상하게 이불에서도 냄새가 났다.
이상했다. 분명히 우리 집에서는 배고프기 전에 맛있는 밥과 반찬이 차려져 있었고, 옷을 여기저기 벗어둬도 다음 날이면 잘 개켜져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으며
이불이나 베갯모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깨끗한 것들로 교체되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게 다 누군가의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답답함과 불안함을 넘어 패닉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잘한다고 믿었던 내 일본어는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하루하루 생활도 헛발질 투성이었다.
매일 아침,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서울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조금씩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한편에 숨겨두었던 패닉이 언제든 나를 잡아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또 덜컥 대학원에 들어갔다. 한국어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내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내 일본어가 훌륭하다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장 하나를 잘 못 만들던 나를 까맣게 잊고, 나는 또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어째 저째 논문을 쓰고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까지 올라갔다. 물론 순조롭지 않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러다 서른에 박사 학위 따겠는데’ 싶었다.
그러다 문득 서른 되기 전에 사회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나중에 또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또 덜컥 취직이 됐다.
그때 나는 ‘대기업에는 들어가기 싫다’, ‘작지만 소신 있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영화일을 해야겠다’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회사를 찾았고 들어갔다.
물론 들어가 보니 내가 상상했던 회사와는 달랐다. 하지만 열심히 일했다. 그때도 다들 내 일본어가 훌륭하다고 흠잡을 때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본어로 글을 쓰면 수정된 코멘트로 종이는 새빨갛게 변했고, 내가 낸 아이디어나 글이 채택되는 일은 없었다.
또 이상했다. 그래도 그때는 조금 감을 잡았다. 내가 부족하구나 하고. 그래서 출근 전에 맥도널드에서 글쓰기 연습을 하고, 퇴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이 잡지 저 잡지를 들추며 ‘요즘 일본어’를 공부했다.
영화를 많이 봐야 하는 일이었기에 주말에는 3,4편 DVD를 빌려다가 보곤 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좋은 선배들 덕분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고정적인 담당 업무와 거래처가 생기고 예전처럼 내 글에 코멘트로 빨갛게 도배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일도 늘어났다. 뭔가 잘 돼 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살면 일본에서 평생 살아도 좋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지진이 났다. 그전에도 지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크고 작은 지진에 익숙해져 있던 일본 사람들이 달랐다. 매일 뉴스에서는 원전 뉴스가 나왔고,
물건이 넘쳐나던 편의점에서는 텅 빈 선반만 볼 수 있었다. 관동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서쪽이나 남쪽으로 거처를 옮겼고 큰 기업들 조차 본사를 옮긴다고 했다.
나도 달라졌다. 매일 크고 작은 여진이 있을 때마다 그때 그 지진이 생각나서 불안했고, 욕조에서 샤워를 하는 대신 단수에 쓸 수 있도록 물을 받아놓았으며 지진으로 대중교통이 끊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굽 없는 낮은 신발을 신었다.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매일 가지고 다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나의 삶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