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가 되기까지: 터닝 포인트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앞뒤 분간 못하던 스물셋 꼬맹이가 서른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스무 살 때 알던 서울과 서른의 서울은 조금 달랐다. 친구들은 하나 둘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내 기억보다도 한층 힘이 빠져 보였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데 급여나 회사 이름이 중요하더냐고 호기롭게 외치던 20대의 나는 그 무모함에 지쳐 꾀가 부리고 싶어졌다.
아니, 굳이 포장할 필요 있겠는가. 그저 이름 있는 큰 기업에서 좋은 급여를 받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러던 차에 모두가 아는 회사에서 비교적 좋은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채용 공고를 발견하였다. 공고에는 일본어 통/번역 업무를 할 석사 학위 소유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일본어 통/번역이라면 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좀 해봤고, 석사 학위는 가지고 있으니 기본 조건은 다 갖춰진 것 같았다. 지원서를 내고 며칠이 지나자 면접을 보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이 면접을 보러 갔다. 정말 백지 같은 상태로.
나와 함께 면접 보러 온 일고여덟 명의 사람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서로의 출신 학교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 보고도 묻길래, ‘저는 일본에서 대학원 나왔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럼 통대 출신이 아니에요?’라고 되물었다.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통역대학원이라는 걸 들어본 기억이 났다.
그렇다. 나는 면접장에 와서야 통역대학원의 존재를 인식하였고 공고에서 본 석사 학위가 내 학위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마도 대학교 시절에 통역대학원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다고 알고 있어서 아예 내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다.
그런 대학원 출신들과 함께 면접을 봤으니 당연히 떨어졌겠구나 싶었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최종 면접을 보라고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다가 일단 안되면 그만이지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최종 면접은 일본인 임원 면접이었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분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은 나쁘지 않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덜컥 입사하게 되었고 통번역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가 그때 입사하게 된 이유는 통역 시험이 없어서였다.
첫 번째 면접에는 인사팀 면접관들이 들어와서 소위 말하는 인성면접을 진행하였고, 두 번째 면접은 일본인 임원이 들어와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게 다였으니 통역 실력을 선보일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통역시험을 봤다면 당연히 떨어졌을 텐데. 그랬으면 지금쯤 통역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여하튼 일본에 있을 때도 일본어 잘한다는 칭찬을 수태 들어왔고 거기다 통역대학원 졸업자들을 제치고 큰 대기업에 그것도 한 번에 입사까지 하고 나니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었다.
통번역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이 일을 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따위 안중에 없었다. 유학시절에도 통역으로 짭짤한 수입을 번 적이 있었으니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처럼 그냥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막상 입사를 하고 통역을 하기 시작했는데 예전 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와는 수준이 달랐다.
그렇게 큰 회사에 익숙하지도 않은 데다 통역해야 하는 내용 역시 기술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화자가 말을 짧게 하면 그 말을 기억해서 일본어로 통역할 수 있었는데
말을 길게 하기 시작하니 다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메모를 했다. 화자가 “오늘은”이라고 말하면 “오늘은”이라고 적었다. 토씨하나 빠지지 않고 적으려고 했다. 기억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내 메모 속도가 말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놓친 부분도 생기고 다시 말해달라고도 하며 허둥지둥 통역을 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매일매일 통역이라고 한다고 여기저기 따라는 다니는데 힘만 들고 점점 더 어렵기만 했다. 그때는 왜 인터넷에서 검색조차 해볼 생각을 못했는지.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부서 미팅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해당 부서분이 일본인 임원이 온다는 소리에 자기들 부서 통역사를 배정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통역사”가 통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나는 이른바 순차 통역, 화자가 말한 후에 통역사가 통역하는 방식 말고는 다른 방법을 상상조차 못 했는데 그분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화자의 말이 끊기는 중간중간의 틈을 이용하여
화자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화자 말 속도에 맞추어 거의 동시에 통역을 진행하였다.
‘저렇게 통역을 하는 거였어?!!’
아이스 버킷 챌린지하듯 누군가 내 머리 위에서 얼음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느낌이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그 “통역사”의 모습을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통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하고는 출근을 했다.
아침 첫 회의. 머릿속에는 어제의 통역사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한번 해보지. 하고 그분처럼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자도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조금 덜그럭거리기도 했지만 통역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게 되네?!.
이렇게 통역을 하니 메모하느라 팔 빠지게 적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훨씬 단축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정말 통역을 잘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시간만큼 좋은 약은 없다고 매일매일 하루 종일 혼자서 회의들을 통역하다 보니 부서의 업무 성격을 알게 되었고
기술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모르더라도 반복되는 기술 용어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너무 강행군을 하고 말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거기다 가끔은 점심시간과 저녁 회식 자리에 가서까지 통역을 해야 했다.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열이 펄펄 나고 온몸이 아팠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쉰다고 연락을 하고 병원에 갔는데 편도선염이 심하다고 했다.
너무 아팠지만 이런 건 처방받은 약 먹고 하루 이틀 쉬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약을 먹고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고 며칠을 쉬어도 계속 아팠다.
그렇게 일주일쯤 회사에 못 나갔다. 회복 후 회사에 나갔더니 나 없는 일주일 동안 일이 거의 안 됐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인 임원은 거의 영어를 못쓰는 사람이었고 나 말고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무였기 때문에 업무에 크게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인사팀에서는 내가 또 아플 수 있으니 한 명 더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파보니 더 이상 예전처럼 몸을 혹사할 수가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아프기 전에 왜 인사팀에 증원 요청을 안 했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요청을 해도 되는지 조차 몰랐다.
새로운 통역사가 왔다. 어릴 적에 일본에서 살았고 그 유명한 “통역대학원” 졸업에 주일한국대사관에서 일까지 하고 돌아온 실력파 통역사였다.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여기서는 선배이고 그 고생 고생을 해가며 6개월을 지냈으니 아무리 날고 기는 통역사가 온 들 대수냐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동시통역”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일단 신입이 들어왔으니 회의 참관하라고 하고 보란 듯이 통역을 했다. 과거 회의 자료들도 보여주면서 이런 내용들을 통역한다고 친절히 알려줬다.
그러자 그 통역사는 그 회의 자료를 가지고 혼자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슬쩍 뭐 하냐고 물어봤더니 단어장을 만든단다. 단어장? 또 누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 치는 느낌이었다.
그걸 미리 만들어뒀으면 좋았겠구나. 누가 가르쳐주기 전까지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하는가. 그제야 나도 질세라 단어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수한 통역사라 그런지 적응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금세 회의에 투입되었고 ‘선배’인 내가 봐도 통역에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임원이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많은 청중이 있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순차 통역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전에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려울 것 없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됐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화자 말 속도가 빨라 다 메모하지 못했고, 놓치는 부분이 자꾸 생겼다.
‘왜 이러지, 집중하자’ 하며 점점 당황하고 있을 때 그 통역사와 교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처럼 토씨하나 다 받아 적는 게 아니었다. 나로서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을 적고서는 화자의 말을 한마디도 빠지지 않고 통역을 했다.
화자보다 더 정돈된 말로 통역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귀싸대기를 세차게 맞은 기분이었다. 저게 통역인가…?
세미나가 끝나고 그 통역사에게 메모하는 게 좀 다르던데 뭘 어떻게 적는 거냐고 물었더니, 화자의 말을 나만의 “기호”로 만들어서 적는다고 했다.
신기했다.
대부분의 통역사들은 자신만의 기호를 가지고 있지만 동기들과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동기? 대학원 동기라고 했다. 아… 그 통역대학원.
“대학원에서 다 배워요.”심드렁한 그 한마디에, 나는 처음으로 통역대학원을 의식하게 되었다.
통역대학원에 가면, 내가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겠구나 하고.
그 이후로 나는 순차 통역을 모두 그 통역사에게 맡겼다. 도저히 그만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계약기간 2년이 차기 전에 더 좋은 곳에 이직이 결정되었다며 그만두었고 나는 2년의 계약 기간을 채웠다.
그 이후로도 통역대학원 출신들이 통역사로 채용되어 입사하였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나는 정식 통역사가 아니다’라는 자격지심이 커져만 갔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통역대학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