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이지만, 회사원입니다.

인하우스 통번역사란?

by 도도

장장 2주에 걸쳐 통역사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적어 보았다.(프롤로그 1,2 많이 읽어 주세요.)

통역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프롤로그는 끝났지만 이번 회차에서 또 대학원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야말로 시계열 자서전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대학원 시절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연재 제목에 걸맞게 인하우스 통역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정식 명칭은 ‘인하우스 통번역사’가 더 정확하다. 즉 조직 내에서 통역과 번역 업무를 전담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통역만 또는 번역만 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필요한가? 회사에서 일반 공채 사원 외에도 전문직 경력 사원을 채용하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법률 자문이 필요할 때마다 외부 로펌을 찾을 수가 없으니 내부에 변호사를 채용하고, 회계 세무 관련해서도 내부에 전문가를 확보해 두는 것이 회사에 유리하다고 판단된다면 채용으로 이어진다.

인하우스 통번역사 역시 내부 업무 시 언어 전문가가 필요한데 내부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울 때 채용하게 된다.

외국인 임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또는 해외 지사 법인 간 업무가 많거나, 아니면 해외 업체와 협업, 컨설팅 등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 통번역사를 채용한다.

외국인 임직원 특히 고위직 임원은 고연령인 경우가 많고 이에 더해 임원을 임시직원이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처럼 기간 한정직이다.

외부 업체와의 협업이나 컨설팅 역시 영구적인 업무가 아닌 프로젝트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많은 회사에서는 기간제 계약직으로 통번역사를 채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할 말 많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일한 곳은 총 3곳이다. 프롤로그 2에서 언급했던 첫 경험(?)과 현재 일하고 있는 곳, 그리고 풀타임 근무는 아니었지만 프리랜서로 파트타임 근무를 했었다.

회사도 다르고 업종도 달랐지만 회의에 참석하여 통역을 하거나 자료를 번역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때로는 회의 통역만 하다가 하루가 끝나거나, 수백 장짜리 자료를 번역하는 경우도 있어 이것만으로도 8시간의 근무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하지만 주 업무 외에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첫 회사에서 만난 일본인 임원의 경우 한국어는커녕 영어도 거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뿐 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통역과 번역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갑자기 세탁기 제어판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는 번역해달라거나 아파트 전달 사항을 녹음해서 보내면서 뭐라고 하는 거냐는 등 생활 전반에 대한 각종 지원을 빈번히 요청했다.

다행히 회사가 큰 회사고 외국인 임직원들이 많아 이러한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외부 업체를 활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 일본어가 가능한 가사도우미까지 구해져서 그 이후부터는 생활 지원은 대폭 줄었다.

그 대신 일본인 임원이 이러한 생활지원 업체나 가사도우미에 대한 불만 토로를 들어야 하는 업무가 늘기는 했지만 말이다.

병원이나 건강검진에도 동행해야 한다. 함께 가기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진료실 또는 검진실에 함께 들어가 증상이 어떤지에 대해, 어떤 병이 있는지에 대해 전달해야 한다.

매우 사적인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통역사도 환자도 매우 불편하다.

얼마 전에는 고령인 일본인 고문이 회사에서 쓰러져 입원을 했었다. 가족분들이 오실 수 없는 사정이라 내가 입원 수속을 도왔고 입원 이후에도 일본어가 가능한 간병인이 구해질 때까지 사나흘 병원으로

출근하여 의료진과의 소통을 도왔었다. 이제야 편찮으신 분에 비하면 내 고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회사 일을 못해 일은 쌓이지, 그만큼 후배 통역사들은 부담은 늘지,

환자 회복도 예상보다 더뎌 얼마나 더 병원으로 출근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겠지… 그야말로 멘붕이기는 했었다. 그래도 무사히 건강하게 퇴원하셔서 다 정리된 이후에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자 갱신이나 은행 업무, 이사, 집수리 등등 생활 지원이라는 한 마디 말로 다 정리가 안 되는 업무들이 많다.

통역사가 어느 정도 이러한 업무를 담당할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들 역시 일개 회사원인데 본인의 사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개개인의 생활 지원을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적당한 바운더리가 필요하지만 이 경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느냐는 회사마다, 또 통역사 개인마다 다르다.

그리고 지금은 AI 통역, 번역기 도입을 위한 업무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자멸하는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한 후배 통역사는 왜 자꾸 AI를 도입하려고 하느냐, 안 그래도 인사팀에서는 통역사들 추가 채용은커녕 자리 줄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AI도입되면 우리만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AI에게 통번역사 자리가 모두 빼앗긴다고 하더라도 내가 AI를 모르고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겠다 싶어서 그전에 AI를 잘 알고 내가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기회를 마련하여 AI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실제 AI는 내 일에 있어 엄청난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10명 통번역사가 밤새 번역했을 일을 AI를 활용하면 눈 깜짝할 새에 끝내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다. 이제는 AI가 사람 말을 듣고 자막으로 번역도 해준다.

물론 번역의 경우 AI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할루시네이션이 있을 수 있으니 두세 명의 검수가 반드시 필요하고,

통역의 경우 역시 발화자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전문용어가 많이 사용되면 오역도 많고, 속도 역시 사람이 하는 동시통역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곧 사람 못지않게 통역, 번역해 주는 AI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내 밥그릇 지키겠다고 전 세계의 흐름을 거슬러 AI 쓰지 맙시다라고 또는 나는 AI를 쓰지 않겠다고 외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일단은 막연한 두려움은 제쳐두고 내 업무 보조로서 AI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여기까지 인하우스 통번역사가 하는 일에 대해 적어 보았다. 결국 인하우스 통번역사란, 회의실 안팎을 오가며 언어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호출되는 사람이다.

통역과 번역을 넘나들고, 때로는 회사원으로서, 때로는 개인의 생활까지도 돕는다. 그 모호함이 이 직업의 어려움이자, 동시에 현실이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리랜서 시절 ‘선생님’으로 불리며 귀하게 대접받던 시절도 있던 터라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지?’, ‘날 뭘로 보는 거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어 전문가’ 이지만 동시에 회사에 소속된 한 명의 직원이기도 하다.

이 애매하고 불편한 역할에 대해,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해 앞으로 조금씩 더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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