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과 단점, 그리고 양면성-1
통역사는 프리랜서와 인하우스로 나눌 수 있다.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에이전트나 지인 등을 통해 일 의뢰를 받거나 아니면 스스로 일을 찾아 매번 다른 주제의 회의 등에 참석하여 통역하면 프리랜서고,
한 조직에 소속되어 조직의 필요에 의해 업무를 진행하면 인하우스 통역사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인하우스 통역사가 되었는가. 분명 장점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하나씩 떠올려 볼수록, 그 ‘좋은 점’이라는 것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말의 이면>
일한 만큼 수입을 얻는 프리랜서에 비해 업무량과 관계없이 일정 금액이 매달 같은 날에 들어오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 인하우스 통역사들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고정적인 수입처를 많이 확보하신 분이라면 인하우스 통역사들 못지않게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바꿔 말해보면 업무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일정한 금액만 들어온다는 이야기이니, 이 역시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토요일 아침 여유롭게 오전 시간을 만끽하고 있던 차에 전화가 와서는 10분 후부터 회의인데 통역 좀 해줄 수 없냐고 한다.
미안하다며 어쩔 수 없었다는 말에 어쩌겠는가… 전화를 받은 내 잘못이지.
그렇게 10분 전에 회의에 투입되는 게 결정되어 일단, 통역 파트너를 찾고자 통역사 단톡방에 지금부터 통역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 애타게 찾아보지만 묵묵부답이다.
(동시통역의 경우 보통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진행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어 교대로 통역을 진행한다.)
파트너 없이 회의는 시작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술 자료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어째 저째 비슷한 소리를 내어보는 것을 목표로 두고(더 이상 통역이라 할 수도 없다…)
양방향 언어를 혼자 통역한 지 40여분. 한계가 왔다. 집중력이 고갈되어 화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고 발음도 꼬이기 시작한 바로 그때. 드디어 후배 통역사가 회의에 참가해 주었다.
그 통역사가 얼마나 고맙던지. 한 달 정도 업고 출근시켜 주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회의는 1시간 남짓 이어지고 끝났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나의 혼을 쏙 빼놓았지만 내가 이 업무로 인해 얻은 건 오후까지 이어진 피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우리 회사에서는 무슨 소리냐, 매달 22시간에 대한 시간 외 업무 수당을 고정적으로 지급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나에게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하나 사람 마음이 어찌 그리 움직이겠는가. 고정적인 시간 외 업무 수당은 통상 임금이라고 여겨지다 보니 추가 업무에 대한 수당은 별도로 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이러한 팝업성, 긴급성 추가 업무들은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나는 매달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고 있기에 군소리 없이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별수 없는 회사원 아니겠는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통역사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로 꼽은 안정적인 수입 외에는 순위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돈 말고는 좋은 점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뜻인가?) 이후부터는 더 좋아서 먼저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어쨌건 회사에 소속해 있으면 해당 업에 대해서는 다른 분야 대비 전문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매일매일 듣는 이야기이다 보니, 업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관련 표현도 쌓이기 때문에 통역을 잘하게 된다고 하기보다는 업계에 익숙해진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기술적인 베이스가 없어 기술 부분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기초적인 것은 인터넷, 서적, 논문 등을 통해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거기다 요즘에는 똑똑한 AI 덕분에 뭐든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프로인지라 궁금하면 언제든 물어볼 수도 있다.
지금 일하는 곳은 전력 관련 회사인데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전기가 만들어져 우리 집까지 들어오기까지 이렇게나 복잡하고 많은 제품이 필요한 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전력 에너지 업계가 수주 산업이라는 것, 시설 교체 수요에 맞게 공급 주기가 형성되고 이에 맞추어 업황이 달라지며, 최근에는 데이터 센터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더할 나위 없는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업계 정보(경제지만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를 매일매일 수치와 여러 증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하간 이런 것들을 통해 아무래도 부외자들보다는 보고 듣는 내용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반면 그 외 분야들 예를 들면 대학원 시절 수 없이 공부하던 한일 관계나 문학, 예술, 역사 등 회사 분야와 거리가 먼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우리 통역사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신 프리랜서 통역사 선배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선배님과 우리 통역사들만의 고충도 나누고 살아가는 이야기, 한국, 일본 이야기, 거기다 어디서든 빠질 수 없는 연예인 가십까지 시간 가는 줄도 잊은 채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렇게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워낙 말씀을 재미나게 하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고 있는 나보다 한국의 여러 뉴스에 대해 더 정확하게 그리고 자세히 알고 계셔서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정도 프리랜서로 일하시면서 정치, 사회, 연예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장르의 통역일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안테나를 펼치고 정보 수집을 하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방면의 분야에 대해 알려면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찾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통역사로서 본받아 마땅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대학원 시절 통역사는 얕더라도 넓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매일매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시 눈 번쩍 뜨고 둘러봐야 한다고 그렇게나 교수님들이 강조하셨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회사라는 얕고 좁은 바운더리(보통은 깊고 좁은데 나는 얕고 좁다)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울타리 속에 숨어있구나 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결국 인하우스 통역사로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당당히 말도 못 하고 그렇다고 방대한 상식도 기대할 수 없으니 그럼 나는 통역사로서 자격 미달인 것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