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는 이유

장점과 단점, 그리고 양면성 2

by 도도

지난주에 인하우스 통역사를 하면 안정적인 수입과 전문성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들을 상쇄시키는 단점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은 세 번째 장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직업>

소설, 드라마, 영화가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작품 속 주인공에 나를 비춰 보며 공감하는 한편,

그 복잡한 이야기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등장인물들을 마음껏 평가하고 비판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회의라는 공간에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성격,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건을 상정한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안을 관철시키려 애쓰고, 다른 참석자들은 허점을 찾아내기 위해 날 선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빛나고, 누군가는 주저앉는다. 어제는 강하게 반대하던 사람이 오늘은 찬성으로 돌아서기도 하고,

늘 질책을 받던 사람이 어느 날은 정확한 판단을 제시함으로써 회의의 흐름은 물론 자신의 과거 평판까지도 뒤집는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고 다이내믹한데 어찌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심지어 내가 매일 접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직접 드라마를 찍으니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배우들이 각본대로 연기한 가상의 드라마에 비할쏘냐.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드라마에는 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다른 의사 결정에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만 할 뿐 의견을 낼 수도 없다.

그것은 통역사의 역할이 아니다. 모두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서로의 언어를 전달하면 그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이 난다.

답답할 때가 없느냐고? 내가 회의장에 있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때는 없느냐고?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회의 참석자인 양 이렇다 저렇다 내 목소리를 낸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통역사가 아닌 것이 된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경청하던 참석자들은 그때부터 내 목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현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객으로만 있던 아마추어가 ‘내가 저 배우보단 더 잘할 것 같아’라며 아무 연습 없이 카메라 앞에 선다고 저절로 신들린 연기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보지만, 그 어떤 장면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인하우스 통역사의 위치를 잘 설명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인하우스 통역사의 장점에 양면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양면성은 비단 인하우스 통역사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프리랜서에게도 자유와 불안정이라는 양면이 존재한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 약 2년 간은 나도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때만 해도 병아리 시절이라 동시통역 행사가 많지는 않았는데 행사 오퍼를 받으면 받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자료가 언제 올까’, ‘어떤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될까’, ‘버벅거리면 어쩌지?’, ‘지난번 회의 때 이런 실수를 했었는데’ 등등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만큼 나는 많은 날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행사가 끝난 다음에도 후회와 자책은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은 그렇게 통역하면 안 됐는데’, ‘그 단어는 미리 찾아둘걸.’, ‘이번에 실수가 많아서 다음에 일 못 받으면 어떡하지?’ 등등

그야말로 자다가도 이불킥을 하면서 벌떡 벌떡 깨는 날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행사가 끝날 때마다 속병이 나고 살까지 빠졌다(요즘엔 아파도 빠지지 않는 살이 그때는 참 잘도 빠졌더랬지…).

그 무렵 나는 프리랜서 일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통역사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프리랜서란 망망대해에 혼자 돛단배 띄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다시 한번 거대한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돛단배가 너무나 하찮고 연약해서 그리고 파도 하나 없는 우물 속에 익숙해지다 보니

작은 물결에도 난파되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감히 프리랜서와 인하우스 통역사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선택 모두 장점이 있고 그에 수반되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지금 내가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물 안에서 익숙한 사람들의 드라마만 보다가 다음 드라마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그 드라마를 통해 나만의 바다를 만들어 나갈지

이제는 선택해야 될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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