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의 묘미

언젠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by 도도

AI시대가 열리며 많은 사람들은 통번역사들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한다. 나 역시 이에 이견은 없다. 대다수의 통번역사들은 AI에 자리를 내주고 말 것이고,

극소수의 최정상급 통번역사만이 자리를 보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통역하는 것을 좋아한다. 통역사만이 느낄 수 있는 묘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몇 가지 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먼저 많은 통역사들이 이 부분 때문에 통역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 멋있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그것도 능통하게 말하는 모습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 멋있어 보이고 또 대단해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 동창 중 하나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덕에 스위스에서 살았고, 그래서 5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 그중 영어가 가장 능통했었다.

그래서 영어 시간에 그 친구가 영어 문장을 읽으면 영어 선생님조차 주눅이 드는 것 같이 보였다(실제로는 안 그랬을 것이다. 어린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지).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은 보란 듯이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하곤 했었다.

욕심 많고 질투심 많던 어린 시절, 그런 그들의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나에게 화도 났었다.

그랬으면 영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본어 통역사가 되었지만 말이다.

여하간 나 역시 그들처럼 능통하게 외국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은 일본어로 밥 먹고 살게 되었으니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어 정말 잘하시네요.’,‘일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등등의 찬사가 더 이상 나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열심히 한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 그런 나에 대한 칭찬인 것 같아서 여전히 싫지 않은가 보다. 뭐 이렇게 피상적인가 싶겠지만… 어쩌겠나. 칭찬 먹고 쑥쑥 크고 싶은 통역사인 것을.


통역이라는 것이 괄호 안에 적확한 낱말을 찾는 퀴즈를 푸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AI를 활용한 영어 교육 애플리케이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바꿀 때 어떤 단어가 가장 정확할지를 묻고 이를 맞추면 “이거 재밌네”한다.

언어 공부를 퀴즈풀 듯이 즐겁고 재밌게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통역할 때야말로 이런 재미난 순간들이 적지 않다. 화자의 말을 듣고 뉘앙스를 잘 지키면서도 적확한 표현이 팝업창 뜨듯 눈앞에 튀어나올 때면 아싸!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동시통역의 경우는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통역이 나와야 하고 순차 통역 역시 연사의 말이 끝났는데 통역사가 우물 쭈물하고 있다가는

청자들은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퀴즈같이 시간제한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

통역사 머릿속에는 항상 도화선에 불붙은 폭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하간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팝업 창이 떠오르니 그 스릴은 그 어떤 첩보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지난번 회의 통역 때 잘 나오지 않아 외워 두었던 관용구나 속담(부탁드리오니 어떻게 안 써주실 수는 없으신지요)을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통역하거나,

직역하면 어색할 말을 정확히 이해하여 그에 걸맞게 의역이라도 잘하는 날엔 내 어깨가 귀에 닿아 있다.

허나, 매일이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순간만이 있는 건 아니다. 분명히 아는 단어인데 갑자기 입에서 안 나올 때도 많고, 모르는 단어들, 표현들도 너무나도 많다.

혹자는 통역사인데 모르는 단어가 어딨 느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매일 튀어나온다.

회의 통역하면서도, 책이나 기사를 보면서도, 그리고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까지 몰랐던 단어와 신조어들 때문에 당황한다.

거기다 일본어의 경우 장단음, 엑센트가 있어 이게 틀리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꼭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발음도 틀리고 장단음, 엑센트도 무너진다. 모르는 단어가 긴장을 고조시키고, 결국 힘이 들어가니 입도 경직되어 버리는 거겠지.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그 반대인 날들이 있다. 그때 그 기쁨과 재미가 계속 이 일을 하게 한다. 그런 순간들이 조금 더 자주 오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묘미는… 사실 묘미라고 하더라도 몇 번 아니, 딱 한 번밖에는 느낀 적이 없다.

한참 회사 사정이 좋지가 않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의 회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로나19 이전이라 대면회의였고, 순차 통역으로 진행했던 회의였다.

일본인 대표가 임직원들에게 많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고 남아 있는 우리 임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내자고 말했다.

진심 어린 대표의 이야기에 나조차도 ‘그래, 이겨낼 수 있어. 더 좋은 날이 올 거야’하고 감화되었다.

다른 청자들도 나같이 생각하길 바라서 대표의 말 한마디, 토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듣고 이해한 대표의 말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자는 마음으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였고 진심을 다해 통역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주 잠깐, 찰나이기는 했지만 그 회의장에 있던 십여 명의 모든 사람들이 말 그대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내 통역 전과 후로 회의장의 공기마저 달라져 있었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보자, 할 수 있다, 이겨 내자라는 투지가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 속에서 빛났고, 단 한 사람 그 마음을 감추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말만을 전달한 것이 아닌 마음을 전달하였다. 그때의 그 경험을 통해 통역사는 결코 막후의 숨겨진 존재가 아닌 회의의 엄연한 참석자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참석자들이 나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화자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여 나 스스로가 감명을 받고, 이를 내 말로 통역하여 청자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일.


물론 앞서서도 언급했듯이 이 묘미는 정말 짧은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때 회의장의 공기, 참석자들의 눈빛, 그리고 나의 절실함은 다시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같이 각자 PC에 앉아 회의에도 참석하지만 그 외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참석자들과 함께라면 더 어려울지도 모르다.

하지만 그때 그 찰나의 눈부심 덕분에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통역을 하고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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