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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Nov 12. 2022

저마다의 발소리

가만 들어보면 고유하던 발소리들이다. 사뿐사뿐 걷는 소리, 툭툭 내던지듯 복도가 울리는 소리, 터벅터벅 어딘가 처량하게 들리던 발소리, 어딘가로 쫓기듯 항상 다급하던 소리, 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무음마저도. 누군가의 발소리였다. 소리가 주인 따라 다변한 탓에, 그중 귀에 익어가는 발소리들도 생겨난다. 매번 듣다 보니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음원이 누구의 것인지 대강 짐작이 가는 소리들이다. 얼굴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저마다의 발끝에도 특유한 소리들을 지니고 있다. 발이 가는 자리에 잔향처럼 남겨진 발걸음은, 그렇게 언제나 고유하다.


사람마다 남기는 발자국 모양이 다르고 바닥에 찍어낸 발자국 사이즈도 다르듯이, 서로에겐 유별난 소리가 날뿐이다. 바닥을 누르는 무게감도, 질감이 다른 물질이 부딪히며 나는 마찰음도 그저 상이하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방향들조차도 겹치는 건 어느 하나 없었다. 같은 공간을 오가던 소리 또한 모두 고유하고 유일했다. 그러니 내 발걸음에도 차분히 집중해봤다. 평소 스치듯 별 신경 안 쓰던 그 소리에. 발걸음의 주기는 얼마나 되는지, 소리 높낮이는 어떠한지, 발소리가 큰 편인지 방향은 잘 가고 있는 건지. 찍혀오던 발자취가 혹여나 지워지진 않았는지.


제각각이던 발소리는 잔잔히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던 순서가 거기엔 없었다는 사실을. 앞지르거나 뒤처진다는 기준이, 빠름 혹은 느림 따위의 잣대가 없다는 걸. 모두 다르니, 비교 우위가 끼어들 틈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음색이 어떻고 보폭이 어떠한지 상관없다. 여기저기서 매기던 우열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모두의 개성인 건데. 누군가의 발소리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따라 걸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얼마간 흉내 내고 따라 해 보아도 이내 내 걸음걸이로 돌아올 뿐이다. 마치 지문처럼, 비교도 모방도 존재치 않는 영역이다. 그러니, 단지 내 갈 길 잘 가면 되는 거였다. 누구도 따라오거나 모사할 수 없는, 내 발걸음과 내 발소리니까.


내 발자취대로 마음껏 내딛으면 그걸로도 충분할 개성이다. 베낄 수 없는 독보적인 보폭이 되어준다. 사위에서 들려오는 걸음걸이 속에서 되려 집중해야 했던 건, 내가 디딘 두 발아래에 흘러나온 발소리였다. 그곳에 가만 집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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