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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Nov 15. 2022

스트레스가 자욱한 순간

과학과 에세이

불안할 때면 손톱을 깨문다. 무의식적으로 시작된 어릴 적 행동이 오랜 습관으로 남아 있다. 손톱 끝에 헤픈 세월이 누적된 탓에 손이 참 못생겼다. 스트레스를 받아내어 상처가 깊어진 손이, 못생겨진 그 모습이 이제는 콤플렉스의 한 조각으로 남았다. 그걸 알면서도 잘 끊어내질 못한다. 손톱이 다 파이고 나면 남은 불안은 마치 산불처럼 옆으로 옮겨붙는다. 손톱 주변부 거스러미가 뜯겨 상처와 흉터로 빨갛게 물들어간다. 문득 그걸 보고 있자면,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단 사실도 덩달아 알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법. 한날엔 검색도 해보았다. 손톱을 지키려면 스트레스의 정체를 알아내야 할 것 같아서. 조회수가 몇백만이 넘는 동영상과 아래에 무수한 댓글이 달린 포스팅이 이어졌다. 호기롭게 하나씩 눌러보고 기대감에 여럿 들여도 봤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 자막 한 줄마저 정묘하게 집중했다. 스트레스를 정의하던 수많은 말들. 어느 정도는 공감을 구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던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들 직관적으로 와닿을 순 없었다. 같은 사람의 생각이라도, 내게로 오는 길엔 꼭 얼마간 이질적으로 변모하는 법이다.


그저 참고 사항이라 여겼다. 타인의 생각은 내게 진리가 될 순 없으니. 그래도 스쳐 가는 한 마디가 와중에 눈에 들었다. 찾고자 하는 답은 항상 내면에 있다는 말. 그러니 외부에서 어떤 것들을 뒤져봐도 떠오르지 않던 거란 메시지. 찾지 말라던 말마따나 내면에 물어본다. 보편이 아닌, 내게 가닿을 정의가 뭔지에 대해서.


심리학과 의학, 또는 철학과 인문학까지. 스트레스와 맞닿을 만한 분야는 다 들여다봤지만 마뜩잖았다. 대신 이미 알고 있어 직관적이던 정의를 꺼내 본다.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힘. 복잡다단해 미묘하기만 하던 단어를 공학에선 단순하게 정의 내리고 있었다.


전혀 관련 없을 듯한 분야에서 선뜻 알려주던 모멘트로 헤쳐 나가 본다.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건, 내게 허용된 면적을 초과한 외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면적을 늘려 힘을 분산시키거나, 한 번에 받아내야 할 힘의 총량 줄일 필요가 있단 말이고. 하나의 수단에만 의지하지 않고, 때로 너무 벅차면 덜어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한 곳에만 가해지던 힘을 차츰 줄여내면 된다는 풀이였다.


스트레스가 눈앞에 자욱한 순간엔, 의식하며 잠시만 쉬어본다. 억지로 참으려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짓누르던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 차츰 의식적으로 해나가면, 스트레스에 짓눌려 생겨버린 오랜 습관도 자연히 고쳐지지 않을까. 뜻풀이가 명료해 좋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돌아갈 것 없다. 알고 있기에 직관적인 접근이 유효하다. 저만친 소외돼 있던 마지막 정의가 외려 가닿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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