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한 건이를 케이지에 넣고 두 손으로 겨우 들었다. 한 손으로 케이지 위에 달린 손잡이를 들고 가기엔 내 힘이 받쳐주질 않았다. 무더위를 뚫고 간 병원에서는 예약도 안 하고 찾아온 우리를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응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대기가 많지 않아 접수 후 조금 이따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전 건강검진이 언제인지 물었다.
"작년 9월이요."
"1년 조금 덜 됐네요. 검진을 다시 한번 받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고양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꽤 긴 시간이거든요."
혹시 몰라 가져온 이전 검진 결과지를 건네드리며 여러 질문에 답했다. 체중이 이만큼 빠지기 전에는 몇 키로였는지, 요새 물은 자주 먹는지, 밥은 잘 먹는지, 말이 많아졌거나 활발해졌는지. 더해서 갈수록 변비가 오는 빈도가 잦아진다는 점과 그때마다 생식기에서 피를 본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이전 검진 땐 신부전이 진행되고 있고 꽤 진행이 됐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사료를 신장 관리용으로 바꾼 것도 알려드렸다. 그 외에는 건이 화장실은 어떤 걸 쓰는지(모래냐 벤토냐), 집에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는지 정도의 질문을 하셨다.
"원래는 3키로가 넘었는데 지금은 2키로 중반까지 내려왔어요. 조금씩 꾸준히 빠지더라고요.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변비만 아니면 대소변도 잘 보는데요. 나이 먹고 신장이 안 좋아져서 그런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이전 검진 때 갑상선 검사는 하셨어요?"
"아뇨, 안 한 걸로 알아요."
"그럼 신부전 검사랑 갑상선 수치까지 알 수 있는 종합검진을 받아보는 걸 추천드려요. 증상이 겹치는 게 좀 있거든요. 신부전이면 진행도를 알 수 있고요."
그럼 그렇게 검사해 보자고 동의하고 건이를 케이지에서 꺼냈다. 우리 어르신은 케이지에서 나와서도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자기를 들면 든 대로, 체중계에 올리면 올리는 대로, 발톱을 깎아주면 깎아주는 대로···. 체중은 2.6키로가 나왔다. 2.8키로까지는 집에서 쟀었는데 그새 또 빠졌나 보다. 채혈을 하는데도 발을 올리거나 하악질을 하며 저항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덕분에 진료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자꾸만 내 눈썹은 시옷자가 되었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온 건이는 케이지로 들어갔다. 혈청 검사가 끝날 때까지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아 케이지 안 구석에 얼굴을 박고 있는 건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얘 지금 기분 겁나 나빠 보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직원분이 건이 이름을 부르며 진료실로 안내했다. 엑스레이 결과 건이의 배는 응가로 가득 차있었고(···) 오늘은 관장을 하고 이후에 다시 변비가 오면 먹이는 시럽약을 주사기와 함께 처방받았다. 노화로 척추 끝이 퇴행성 변형이 왔다. 이것 때문에 변을 보는 게 더 힘들 수 있다고···. 생식기는 조금 부은 거 같지만 큰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도 그럴게 어르신은 소변은 계속 잘 보고 있었고 엑스레이에서 결석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혈청 검사 결과는 이랬다. 당시 수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것과 이것저것 찾아본 것을 종합해서 말하자면, 건이는 신장 관련 수치보다 간 관련 수치가 높게 나왔다. 신장 관련 수치는 크레아티닌(Creatinine)과 BUN을 보면 되는데, 현재 더 정확하게 신장 기능 추정 지표로 활용하는 건 크레아티닌이다. 건이는 크레아티닌 수치가 이전 검진 때나 이번 검진 때나 정상 수치였다. BUN는 신장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수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수치만 보고 신부전을 판단하기엔 부정확하다고 한다.
간 기능 수치는 ALP, AST/GOT, ALT/GPT 수치를 보면 된다. 그리고 건이는 간 기능 수치 세 가지 모두 높게 나왔다. 간 수치가 높으니 간염, 지방간, 간경변 등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간이 과부하되어도 이렇게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다.
단백질 수치를 보여주는 알부민(Albumin)은 오히려 이전 검진 때 보다 낮아져 있었다. 높으면 탈수, 낮으면 영양실조와 간기능 저하 상태임을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전반적으로 신장보다는 간 기능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신부전 진단 시 정확도가 높은 SDMA 검사 결과와 갑상선 호르몬 수치 검사 결과는 하루에서 이틀 뒤에 나온다는 거였다. 그러니 우리는 혈청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만 들을 수 있었다. 나머지 두 검사 결과는 나오는 대로 연락을 주신다기에 알겠다고 하고 진료비를 계산했다. 물론 룸메이트의 카드였는데 영수증을 받아보고 뜨악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엄청난 액수였다. 무조건 취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건이가 들어가 있는 케이지를 끙끙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건이는 집에 오자마자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 기분 나쁜 게 당연하지. 어르신! 고생했다!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바로 다음 날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고, 검사 결과지를 PDF로 보내주었다. 그 뒤로는 진단 결과를 길게 쓴 메시지가 이어졌다.
SDMA 검사 결과는 정상 수치가 나왔고, 갑상선 호르몬인 T4의 수치는 정상 상한치의 두 배나 높은 수치가 나왔다. 체중감소, 다음다뇨, 이전보다 말이 많아지는 등 임상증상 역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갑상선 치료를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비용도 그렇고, 어르신 나이도 그렇고 무난하게 약물 치료를 하는 게 낫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건이가 신부전이 진행되고 있다면 초기일 거라고 하시며 힘이 닿는다면 신장 관리 사료를 그대로 급여하면서 관리해 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혼자서 다시 내원해 건이의 약을 받아왔다. 자그마한 하얀 정제가 한 알씩 하루 두 번, 이 주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 주 후에 다시 내원해서 재검을 받고 수치가 안정될 때까지 이걸 반복해야 한다.
동물에게 약 먹이는 걸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첫 시도를 해봤는데 건이가 무지 싫어했지만 알약은 생각보다 잘 먹어주었다. 문제는 주사기로 변비약을 먹이는 걸 너무 못해서 룸메이트에게 넘겼다. 그러다 점점 모든 약을 룸메이트에게 맡겼다. 나보다 훨씬 잘 먹였기 때문에···.
호르몬 약을 먹이면서 건이는 점점 살이 붙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홀쭉하던 허리도, 도드라지던 다리들도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도 다행히 잘 마셔주었다. 큰방 작은 물그릇을 하루 두 번 갈아주는데 아침에 갈아줄 땐 물이 다 없어져있다. 새벽 내내 깨있으면서 마시고 싸고를 반복하는 듯하다. 저녁에 갈아줄 때는 건이가 오후 내내 자느라고 물을 덜 마셔서 물그릇이 조금 차있는데 버리고 새로 가득 따라주고 있다. 사료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 안되겠다, 빨리 취업해야지.
*참고한 사이트*
https://blog.naver.com/summerizm/222854985733
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