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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May 22. 2024

배고픔이 낳은 오해

그러나 나는 변명도 하지 않았다

안성에서 시작한 국민학교 4학년 시절, 항상 배가 고팠다. 

깡마른 단발머리의 소녀였던 나는 이유 없이 늘 허기가 졌다. 

입도 짧았던 편인 데다, 반찬이라곤 김치 조각과 단무지, 간장 정도가 전부였던 밥상 앞에서 

내 입맛은 도무지 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반찬으로 김치가 아닌 날이 드물었고, 병에 담긴 김치 국물이 가방 안을 흥건히 적셔

난감했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칫국물 냄새가 가방에서 떠나지 않는 날이면 나는 너무도 창피해서 수업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날도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허기진 배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미선아, 나랑 과자 사 먹으러 가지 않을래?"

혹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유난히도 그 '과자'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신이 나서 친구와 학교 앞 구멍가게로 향하는데, 친구가 그 용돈의 정체를 밝혔다. 

"이거, 엄마 주머니에서 훔친 거다!"

아무렇지 않은 듯 서둘러 가게로 향하는 친구 뒤에서 나는 잠시동안 갈등했다. 

훔친 돈이란다. 훔친 돈...

정직하지 않은 돈인데... 이런 돈으로 산 과자를 빌어 붙어먹으면 안 되는데...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손은 친구가 우적우적 씹어대던 그 과자 봉지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100원짜리 새우깡 한 봉지에 배고팠던 나는 양심을 버렸다. 


그때였다. 

저 멀리 앞에서 엄마가 보였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이 새우깡의 정체를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절대 안 되는 거라고 배웠던 터라 덜컥 겁이 났다. 

어떡해야 하지? 어쩌면 좋지?...

결국 나는 엄마를 못 본 척해버렸다. 

엄마의 어리둥절한 시선을 외면한 채 나는 친구의 과자 봉지만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더 이상 과자도 맛있지가 않았다. 

그냥 엄마와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이대로 길이 끝나버리기만을 바랐다. 


그날, 

나는 집에서 엄마에게 회초리로 수도 없이 맞았다. 

엄마는 나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팼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싹싹 빌어도 소용없었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엄마의 우악스러운 손길에서 나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작은 몸뚱이 어디를 맞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이, 

그냥 나는 그 무자비한 회초리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나는 엉엉 울었다. 

너무 아프고, 너무도 서러웠다. 

가난하면 이렇게 비참해도 되는 건가...

어린 마음에도 난 이 비루함에 몸서리쳤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엄마는 한참을 더 나를 휘갈기고 나서야 회초리를 멈췄다. 

엄마도 울고 있었다 

엄마는 외증조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토해내듯 말했다.

"이 계집애가 친구 앞에서 이 엄마가 창피했던 거예요. 

그래서 나를 아는 체도 안 하고 지나가더라구요. 

가난하다구, 초라하다구... 이 에미가 그렇게 창피했던 거라구요, 이 계집애는..."

오해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이미 맞을 대로 맞아서 온몸은 퉁퉁 부어버렸고, 마음속 상처도 날 만큼 났다. 

이 오해를 푼들 무엇이 달라질까?

서러운 마음에,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너무도 아픈 몸뚱이 때문에

나는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노을은 무심히도 붉게 타는데, 

깡마른 소녀의 눈가는 더욱 빨갛게 부어오른 채 기우는 해를 바라보았다. 

캄캄해져라, 어둑해져라...

이 비루하고 남루한 몰골을 감출 수 있게...

그날 저녁, 

나는 그렇게 어둠을 퍼먹으며 배를 곯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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