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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Nov 18. 2022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반항기

7살, 초4병 되기 전에 7세병은 왜 몰랐었나

우는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닌 거의 격멸하는 눈빛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쳐다보고만 있는데 눈두덩이는 부어있고 입술은 나와있다.


속옷을 방 안에서 갈아입으라고 했다는 이유다.

더 뒤로 감기 해보면 양치 세수하라고 아침에만 6번 정도 말했던 점.

영상 보는 시간을 몇 시 몇 분까지만 하라며 시계를 확인시킨 점.

더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전날 저녁 본인이 원하는 영상을 길게 못 보게 한점. 그 시간이 이미 오후 10시 5분. 주로 세상 떠날 듯이 흐느끼는 게 주특기다. 앞서 1분도 보여주지 않은 사람처럼.

누나는 동생 핑계를 대고 동생은 누나 핑계를 댄다.


무슨 7살이 이렇게 한 맺힌 한숨소리를 내는지 모를 일이다.

숨을 한 30초는 참다가 몰아쉬는 것처럼, 그 옛날 고된 시집살이에 고생했던 우리네 엄마들과 같은 깊고 짙은 한숨소리다.


나는 어떤 것도 시작을 안 했는데 아이의 반응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태권도, 수영 학원 다닌다. 방과 후 월, 수, 금이다. 모두 본인이 원해서 다니는 학원이다. 공부보다 체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잘되었다 생각하며 보낸 곳이다.


주말에는 놀이터 가서 4시간씩 논다. 평일에도 짧으면 30분~길면 2시간 가까이 논다.

집에서 해야 하는 공부는 15~20분 소요되는 학습지 패드 한 개다. 일주일에 산수 문제지 2 페이지 푸는일 3~4회 정도 요청한다. 2페이지지만 양이 많다고 하면 한 페이지로 줄여준다.


공부에 관련해서 정말 거의 강요하는게 없다. 약속한 양조차  힘들다 하면 줄여주거나 미뤄주거나 빼준다. 내가 회사 휴직하는 동안 아이에게 좋은 추억도 많이 심어주려 했고 여러 육아 영상공모전에 함께 참가해서 수상도하고, 각종 부모 강의, 부모 수업도 듣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도 대여해주곤 했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내 성격이 워낙 안전에 관해서는 조심성이 심하게 많아서 안전 관련해서 하는 이야기들이 잦고 잔소리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윽박지른 적 없고 크게 혼내고 난 뒤에도 자기 전에는 늘 풀어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달래주며 잠에 들었다. 그것만은 철칙이었다.


아이가 내게 오해를 하고 있을망정, 아이의 마음의 상처가 그 하루를 넘겨서는 안 되겠단 생각에 늦으면 잠들기 전 누워서라도 엄마의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사과를 하고 아이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말도 자주 해주었다.




이젠 아이 표정 보는 게 내가 버거워서 아이 입장에서의 '잔소리'못하겠다.

주도권이란 말이 참 우습다. 하지만 아직 내 아이는 어쨌거나 유아다. 곧잘 어린이집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최고형님, 최고 형님반이라며 추켜세워주지만 7살, 그것도 생일이 늦은 이제 만 72개월도 안된 2016년 12월 말생이다.


1년간 휴직하면서 내면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아 수박겉핡기식 회복이 된 엄마의 좁아터진 마음 때문일까?

나의 성장과정에서의 결핍을 겪게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나온 엄마의 과잉보호일까?

지금 우리 아이는 그야말로 예의 없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데 나는 그걸 방치하는 것일까?


 



내게서 원인을 찾는 이유는 두 아이 모두 아빠 앞에선 그렇지 않다. 아빠가 무섭게 호랑이처럼 엄하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나보다 더 활동적이지만 엄격할 때는 엄격하다. 아빠 앞에선 선 넘는 일이 없다. 아빠의 훈육 및 설명은 횟수가 적지만 길고 강력하다. 아이는 그 말을 끝까지 다 듣는다.


하지만 엄마가 이야기하면 한숨 쉬고 듣지 않는다. 아이는 모르나 본데 나도 상처받고 포기하고 싶다.


애를 상대로 이런 말, 행동을 하는 내가 참 너무 싫다.

복직을 2주 정도 남기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면 내 이야기는 더욱 듣지 않고 엄마는 뒷전이 되겠지. 같이 마주할 시간도 줄어들 거고 내가 암만 노력해도 나 역시 피곤해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을 테며, 물리적 함께할 시간이 줄면서 아이들 마음에서 점점 나는 멀어지겠지.


둘째의 미운 4세를 겨우 넘기고 나니 첫째의 말로만 듣던 미친7세다.


아이들마저 사람가려가며 생떼쓰는가 싶다. 결국 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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