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징쌤 Jan 22. 2023

내가 받아야 하는 것에 당당해지기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자

지방에 있는 한 대학교에 출장을 다녀왔다. 학생들의 취업 역량을 기르고 진로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게 우리 회사 제폼을 소개하고, 쓰는 법도 간단하게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데이터 업무를 맡아줄 사람을 뽑고 있다. 그 채용 공고들을 살펴보면 우리 회사 제품을 쓸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이런 특강을 준비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방이다 보니 왔다 갔다 하기 힘들 것 같았다. 웬만하면 거절하려는 생각으로 강의료를 좀 세게 불렀다. 그런데 담당 교수님이 선뜻 그 비용을 다 내고 특강을 열겠다고 했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게 있어서 예산에는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다녀오게 되었다.


교육 자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담당자와 미리부터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자료를 준비했다. 하다 보니 총 3일, 14시간짜리 커리큘럼이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길다고 느껴진다. 이 시간 동안 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꾹꾹 눌러 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학교에서는 일정을 좀 더 길게 잡더라도, 학생들이 제품을 제대로 만져보는 교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3일 동안의 교육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솔직히 강사로서 이것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다. 거기에 더해서, 한적한 겨울 바다를 즐기기도 했고,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들도 먹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교육 잘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제서야 아쉬운 점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교육 앞뒤로 생기는 일들 중에 내가 놓친 것들 몇 가지가 뒤늦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로서는 제품을 팔면서 생기는 매출과 수익이 가장 중요한 실적이다. 그런데 이번 교육은 학생들이 대상이어서 제품을 팔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품으로 말미암은 매출과 수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회사 입장을 생각하면 처음 교육 비용을 조율할 때 교육비에 더해서 교통비나 숙박비 같은 기타 비용도 예산에 넣어달라고 했어야 했다. 게다가 이번 교육에 대한 결과보고서까지 내가 쓰게 되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에 대한 비용도 예산에 넣못했다. 나중에 찬찬히 따져보니, 받아야 할 만큼 못 받고 일을 해준 셈이엇다.


내가 왜 그랬는지 곰곰히 고민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 버릇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돈 앞에서 착하게 구는 것 같다. 이전에 창업했을 때, 회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고객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일을 더 많이 해주곤 했다. 그렇게 6-7년 정도 하다 보니, 그게 거래할 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전체 시장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회사는 업계에서 몇 년째 1위를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실적도 안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고객에게 많이 굽혀가면서까지 일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 달라고 해도 된다. 그리고 이번 교육 같은 작은 건들은 거절해도 딱히 아쉽지도 않다. 그러니 나도 회사를 등에 업고 좀 더 당당하게 일을 해도 괜찮다.


이걸 알고 있는데도 막상 고객과 흥정을 할 때는 마인드를 바꾸기가 참 어렵다. 우리 대표님은 내가 고객에게 돈 얘기 하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종종 걱정하신다. 반대로 나는 지금 회사 다니면서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져서, 대표님이 괜한 걱정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작게 보면, 고객과 거래하는 건마다 받을 만큼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할인을 해준다면 그 대신 우리가 얻는 게 있어야 한다. 크게는 회사의 자원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도록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번에 비용을 못 받고 일을 하는 만큼 회사로서는 자원을 낭비하게 된 것이다. 내가 굳이 생판 모르는 업계에 와서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이런 것들을 잘 배우기 위해서였다. 출장 잘 다녀와서, 새삼 초심을 다잡아보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IT에 정답이 어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