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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Feb 08. 2023

헛짓거리 한 건 아니구나

20살이 된 제자들을 만난 후기

세어보니,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어느새 10년 차가 되었다. 내 첫 번째 직업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심지어 내 마음대로 수업을 하고 싶어서 무턱대고 회사까지 하나 차렸다. 그 햇병아리 시절에 아이들 몇 명을 만났다. 이 아이들은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짧게나마 만났던 아이들이 몇 있었고, 그 뒤에는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아이들에게 가장 마음이 많이 간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만큼 많은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지. 언젠가 이 아이들 대학 가는 것까지 보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 다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아직 마음 한편에 짐처럼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가르치는 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게다가 초등학생과 수업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첫 고객을 앞에 두고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아이들과 수업을 이끌어가야 했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한 번 한 번 해내는 게 벅찼지만 꾸역꾸역 진도를 나갔다. 대단한 수업 목표나 계획 같은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수업할 때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면서 방향을 찾아나갔다. 아이들을 만족시키려고 온갖 생각들을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렇게 했던 수업들이 나중에는 정식 커리큘럼으로 다듬어지기도 했다.


이런 어설픈 수업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을 수업의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학생을 수업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것이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 다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학생들이 수업 방식이나 내용에 대해 제안을 했을 때(보통 수업하기 싫다거나 놀러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무작정 O/X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 대신, 그 제안에 대해 깊이 토론을 해보는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 그 제안에 대해서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제안대로 했을 때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등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런 다음 한 가지로 결론이 내려지면 직접 실천해 보고, 피드백까지 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첵임을 지는 사람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 교실에 있었던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끈끈해졌다.


나를 비롯한 동료 강사들이 이런 수업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한 가지 있었다. 학생들을 학원 뺑뺑이 돌리지 않아도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충분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무리해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낸다. 그렇게 학원을 많이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도 만족할 만한 입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10대 시절 내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면서 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학생들은 이런 사교육의 틈바구니에서 한 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꽤나 괜찮은 입시 결과를 거두었다. 비슷한 입시 결과를 거둔 많은 학생들과 비교해 봤을 때, 우리 학생들은 훨씬 가성비 좋게 입시를 마무리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입시 결과만 가지고 한 사람의 삶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안다. 10대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에게 입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래서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을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힘을 10대에 가지는 것이다. 2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30대를 맞이할 수 있다. 또 30대에 열심히 노력하면 훨씬 나은 40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억지로 만들어진 명문대생보다 입시 결과는 그리 좋지 않더라도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훨씬 '자기 다운 삶'을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자기 다운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10년쯤 만나니, 이제는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친척 모임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학생들을 만나기 전 며칠 동안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력서를 쓰면서 내 지난날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이루어놓은 게 없는 듯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이 멋있게 20대를 맞이한 모습을 보니, 내가 그동안 영 쓸데없는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삶의 중요한 챕터 하나가 이렇게 끝난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예전 추억은 예전의 것으로 흘려보내고 앞으로의 내 삶을 고민해도 괜찮지 않을까. 정작 내가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을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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