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욕구는 나 스스로 채우는 것
앞의 글을 쓰면서, 이런 얘기를 왜 또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이전에 수업 한창 열심히 하던 시절에 힘들 때나 뿌듯할 때, 아니면 꼽씹을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저런 글을 자주 썼었다. 같은 맥락이라면, 지금 회사에서 일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제는 그 때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글감도, 내용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또 옛 추억에 젖어서 그 시절에 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하고 말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정 욕구 때문에 계속 추억팔이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인정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지금은 어쩐지 스텝이 꼬여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때 했던 일이 영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큰 듯하다. 그런데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전에 못 한 게 있다면 깨끗이 받아들이고 앞으로 좀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러기보다는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 아니었어'라고 어떻게든 합리화를 하고 싶은가보다.
어쩌면 '내가 지금은 이래도 왕년에는 잘 나갔어!' 하면서 으스대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입만 열면 군대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살면서 자랑할 만한 일이 군대 갔던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면 한 때 꽤나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운이 안 좋아' 사업에 실패하고 지금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사업이 실패하기까지 자기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게 된 건 다 운이 나빴거나, 남들이 자기 능력을 몰라줬거나, 아니면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자기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자기가 고생하는 이유를 모두 남 탓, 세상 탓으로 돌리면 잠깐은 화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달라져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그러니 그저 세상에 대한 울분만 토하면서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갈수록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점점 더 힘든 처지로 빠져들 따름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거기에 발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학생들 가르치던 시절을 추억하는 나는 그런 사람들과 뭐가 그리 다를까 싶다. 나도 솔직히 지금의 내가 온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옛날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다. 그나마 회사 일이 잘 풀릴 때는 옛날 생각이 잘 안 난다. 인정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럴 때는 일하는 게 즐거워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하지만 일하다 실수하거나, 뭔가 잘못해서 잔소리를 들을 때면 자존감이 쑤욱 낮아진다. 내가 나 스스로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하다 보니 남이 인정해줄 때와 아닐 때 기분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아마 내가 나를 충분히 인정하면 남의 인정에 목메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나를 충분히 인정해주려면 어떤 게 필요할지 고민하고 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에 보니 '자기 자비(self-compassion)' 라는 태도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잘 했다', '그 만큼 했으면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비전을 다시 세워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나는 아무리 작은 일을 하더라도 그게 내 삶의 가치나 목표를 이루는 일이라면 기쁨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비전을 품고(visionary)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