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커해너, <AK 47>
중1 남학생 네 명짜리 반이 있다. 이들은 내가 짠 커리큘럼을 싫어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래리 커해너의 <AK-47>이라는 책을 골랐다. 이들은 표지를 보고 책에 반해버렸다. 그리 의미있는 책이 아닐 것 같아서 다른 책을 보자고 학생들을 여러번 설득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교재로 쓰게 되었다. 막상 수업을 해보니 이 책을 교재로 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큼 더 좋은 일은 없으니 말이다.
나는 무기를 잘 모른다. 이 책으로 수업을 하자고 했을 때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 무기 전문가들이 몇 있어서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책쓴이가 저널리스트여서 읽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글을 잘 쓴다. 그래서 술술 쉽게 읽힌다. AK-47이라는 소재로 20세기의 세계사를 폭넓게 살펴본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제3세계 국가들의 현대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AK-47은 소련군의 주력 무기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는 사람이 47년에 처음 발명했다. 이 총은 발명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Automat Kalashnikov 47). 그 후 여러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지만, 그냥 다 뭉뚱그려서 AK라고 부른다고 한다. AK는 만들기 쉽고 작동시키기 편하다. 연사속도가 빠르고, 중형탄을 써서 살상력도 뛰어나다. 정글, 사막 같은 험한 곳에서도 잘 작동한다. 그야말로 전천후 돌격소총이다.
AK는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 2차대전부터 근거리 접근전이 많아졌다고 한다. AK는 이러한 근거리 접근전에 좋은 무기였다. 또한 숲이나 사막에서 급작스럽게 적을 마주쳤을 때도 효과적이었다. 작동이 쉽고 연사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소련은 공산권 국가들의 무장을 돕기 위해 AK를 싼값에 팔았다. 뿐만 아니라 AK를 만드는 기술까지도 전달했다. 책쓴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쓰라리게 패배한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AK 때문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각종 반체제 세력들은 AK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 아래에서, 소련은 소련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자기 세력을 늘리기 위해 AK를 무분별하게 퍼트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이 해체한 이후, 동구권 국가들은 급하게 돈을 구하기 위해 AK를 마구 팔아댔다. 그 때문에 제3세계에는 'AK문화'라는 게 만들어졌다. AK가 화폐처럼 유통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AK에 의존했다. 그 여파는 지금의 ISIS에까지 이어진다.
두어 번쯤 읽으니, 돌격소총 하나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까지 들썩였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치킨게임을 벌이던 와중에 AK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들이 제3세계로 흘러들었을 수는 있겠다 싶다. 심지어 한국전쟁 때 중공군은 AK를 들고 참전했다고 하니, 우리와도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