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두려운 우리에게
오늘도 실패했다. 카페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쿠키를 먹고 만 것이다. 벌써 며칠 째 야금야금 단 것을 먹고 있다. 먹으면 안 되는데.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먹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먹어치운 것이다. 이렇게 또 혈당이 올라가고, 몸이 변화에 반응해서 이런저런 안 좋은 증상들이 나타나겠지. 한숨이 나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엄청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크게 실패한 적도 없었고, 어딜 가나 잘한다는 얘기만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고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로, 더는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 나를 눈여겨보다가 '잘한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그랬다. 두 번째로는 오히려 성공보다 실패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마음처럼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고 얼기설기 어찌어찌 삶을 이어가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잘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에는 노력을 들이는 것에 대해 결과가 곧바로 나왔다.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면 성적이 잘 나왔고, 대회 준비를 하면 상을 탔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가족,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칭찬을 해줬다. 그 생활을 몇 년이나 반복하다 보니 노력을 하면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인으로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진짜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 인생은 오히려... 찝찝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의 삶이 좀 더 팍팍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학창 시절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칭찬이라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그런 걸 바라면 어린애에서 못 벗어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거다. 그런데 사실은, 사실은 아직도 그런 걸 바란다.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점이 뭔지도 알고 싶고, 더 못하는 것, 평범한 범주에 들어가는 것,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런 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고 남몰래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색을 잃어가는 것 같다.
모든 결과를 줄 세웠던 학창 시절과 달리, 우리 세계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생을 떠올리면 자주 찝찝해지고 지금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어지고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 된다. 너는 이렇게 구는데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일 때, 그래 너는 그렇고 나는 이렇구나, 속 편하게 굴어도 될지 겁이 나는 것이다. 내 위치를 알아야 칭찬받을 수 있을 텐데. 못 하는 걸 피드백해서 보완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를 알아봐 주거나, 보상해 주거나, 칭찬해주지 않는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고 특별한 일이어서 만약 운 좋게 벌어진다면 따로 기록해야만 할 정도다. 나는 주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들에서 실패한다. 실패만 쌓여간다. 아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던데 나는 이런 실패들로 성공을 향해갈 자신이 없는데. 일상이 반복되듯 계속 실패할 것만 같은데. 작은 실패가 모여서 찝찝한 일상이 되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고 내가 한심해지고 짜증 나고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잘하고 있는 거 맞나?
그러나 실패를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실패에 무뎌지는 것뿐인 듯하다. 아무리 죽어라 노력해도 나는 실패하고 실수하고 멍청한 짓을 하니까. 사소한 실수를 줄이거나 실패를 하지 않는 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소관이 아닌 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상은 내 실패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실패가 나의 개인적인 일이라면, 동시에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일이라면 무수한 실패의 기억을 물 흐르듯 보내줘도 좋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면 내가 저지르는 실패가 점점 빈도와 규모를 키워가면 어떨까. 부끄럽긴 하지만 어쨌든 실패는 도전했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실패에 대해 고민하는 건 주로 어떤 일을 새로 시작했을 때인 것 같다. 나 또한 최근 새롭게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글쎄 내가 너무 못하는 거다. 아는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말도 잘하고 경력도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가만히 있고. 숨만 쉬어도 주눅이 드는 상황에서, 어쩌면 나를 침잠시키는 상황 속에서 나는 자기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나?' '나 잘하고 있는 건가? 잘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여러모로 흑역사를 많이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결국 무언가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견뎌야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지. 어른의 삶은 정말이지 팍팍한 것 같다. 그 끝에 달콤한 보상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내가 나를 잘 알아주는 것이다. 너, 잘하고 있어. 잘했어. 어느 정도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자비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힘마저 없으면 인생이 너무 척박해진다.
그러니 꼭 기억하기. 실패해도 괜찮아. 아니, 우리는 인간이라 실패할 수밖에 없어. 실수하고 바보 같은 짓을 했다니, 그게 당연한 거야. 나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알아주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결함에 조금 더 너그러워지자. 어쩌면 실패했다는 건 오늘도 살아서 뭔가 이것저것 해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보낸다! 실패를 다독이는 위로를, 그리고 계속해서 실패할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