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삶을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

'정답 맞히기'의 폐해

by 이도이

최근 나는 아팠다. '젊은 사람이 벌써 왜 그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을 정도로 여기저기 아팠다. 신경 쓸 것도 하나 둘 늘어갔다. 햇빛 쐬면 안 되고, 맵고 뜨겁고 단 것, 몸에 안 좋은 건 당연히 먹으면 안 되고, 잠도 충분히 자야 하고, 물도 마셔야 했다. 때문에 한낮에는 밖에 나갈 수가 없다던가, 양산을 꼭 챙겨야 하고, 약을 하루 두 번 먹어야 한다던지 하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 일상에 스며들었다.



사는 곳을 옮긴 지 고작 며칠 만에 잠잠해졌나, 싶었던 몸이 또다시 탈이 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족들 없이 혼자였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돌아다녀야 했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치료를 권했고 당연히 필요했기에 시작하긴 했지만 생전 처음 받아 드는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나 병원 방문으로 꽉 찬 스케줄은 스스로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이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가족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잘 지나 보내고 나중에 '그때 사실 아팠다' 이렇게 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안부 차 하게 된 전화 한 통에서 뜬금없이 고삐가 풀려버렸다. "힘들었겠다, 짧게라도 말해줄 수 없어?" 가볍게 말하고 넘어가자는 듯 유도한 건 나였는데 정작 가족들이 정말 몰라주니 서운함이 물 밀듯이 올라왔던 것이다. 엄마는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아픈 줄 몰랐다고, 아팠으면 말을 하지, 가족한테나 투정 부릴 수 있지 않겠냐며 다음부터는 미리 말을 해달라고 했다.



듣고 싶은 말은 실컷 들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나는 왜 가족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정해 둔 페르소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모든 걸 혼자 해내는 나'였다.



이런 완벽주의적인 면을 발견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인생 곳곳에 다양한 모습의 페르소나를 설치해 두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이것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롤플레잉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를 받아 든 적도 많았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기대를 계속 받았고, 그래서 실제 편안한 나를 내보이기보다는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모습을 꾸며내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정답을 도출해 내는 것. 이것이 나의 생존 전략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가면부터 썼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좋은 친구라면 같이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 당하기 싫은 일도 친구가 하면 그냥 참았다. 엄청난 예민인이지만 쿨하고 털털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가족들에게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척했다. 공부나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멋진 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하거나 인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애인에게도 진짜 내 마음이 어떤 지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걸 내어주었다. 진짜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인간관계가 온통 사채처럼 느껴지더라. 별 볼일 없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이었으니 말이다.



롤플레잉을 잘했다는 의미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 속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과 연결된다. 이 능력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부치고 싶기도, 사회심리학을 전공해서 나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기도, 아주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한데, 어쨌든 대략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이 굳이 말하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건 선천적인 능력이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 발전했다. 아무래도 민감해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민하다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는 법.) '해야 한다'는 가치관과 실제로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나의 통찰력이 시너지를 냈던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면 해야 하는 것들 잘 해내면서 그럭저럭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삶에 대해 경고하는 사건을 몇 번 겪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나는 대학교 입시를 수시로 넣었는데, 자그마치 삼 년을 오직 대학교 하나만 보고 갈아 넣었다는 뜻이다. 대학교에 오자마자 시작되는 취업 압박에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지나간 삼 년이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텅 비어 있는 듯한 감각'이 두려웠다. 다시는 내 삶에 그런 구멍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안에 있는 강박적 페르소나들을 찾아내 부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본래의 나 자신을 숨기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했던 건 단지 몰라서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삶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나아지게 할 수는 없다. 해야 할 일만 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바닥에 내던지는 짓이다. 작고 사소한 선택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로, 머무는 환경, 인생 가치관 등 굵직굵직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마음대로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게 많을수록 쌓이고 쌓이면서 자신감도 붙고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마음대로'라는 표현은 어쩐지 부정적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 아닌가? 이런 점이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



나는 곧 이 문제가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 생존본능,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의무 등을 빌미 삼아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 자신은 느끼지 못할지라도 우리 중 누구도 영향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케데헌'이 그렇게 공감받고 흥행했을까.) 자기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지나온 내 얘기를 들으면 뭔가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 것도 그쯤부터였다.



내가 스스로 진행한 몇 년간의 과정은 외부에서 나에게 심어 놓은 자아를 인지하고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모두가 말하는, 좋긴 좋은 것 같은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 흔한 문장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글이 너무나도 정곡을 찔러서, 이제는 정말 행동해야 한다는 직감이 드는 바람에 외면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살던 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왜 해야 하는 것만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왜 내가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글이 짧고 에피소드도 몇 개 안 되어서 몇 번 더 이 주제로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사실 모든 문단을 가지고 새로운 글을 한 번씩 더 쓸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내버려 둬도 혼자 알아서 잘 가는 시간이 있으니 여유를 갖고 하나씩 꺼내어보자.



*글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이나 이야기해보고 싶은 점, 남기고 싶은 소감들 등 댓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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