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 지옥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는 게 느껴진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고, 할 궁리를 하고, 그게 무엇이든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 멋있고 대단하게 느껴졌었는데. 점점 우리가 그렇게 달릴 수밖에 없는 지옥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위화감이 든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불안을 원동력으로 삼는 법을 세뇌당해왔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주입식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작동 방식이 아이들의 생존 본능을 약점잡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가정에서 돌봄받지 못하면 죽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네 존재가 당연하고, 너뿐만 아니라 누구든 살아갈 가치가 있으며 네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봐줄 것이라는 지속적인 믿음 형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애착 형성이 건강하게 이루어진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존재, 생존을 위해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당위성 등에 대해 의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는 한 그 사람은 땅굴까지 파고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선 역사로 보아서도 한국인들이 저렇게 건강한 양육 과정을 겪어본 적이 없고, 지금 학생들을 길러내는 거대한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무한정 채워주어야 할 아이들의 마음을 볼모 삼아 해야 할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쓸모'를 다하도록 요구받는다. 그 쓸모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잡고, 돈 벌면서 아이 낳아서 효도하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보아 한 인간이 생애주기에서 가장 처음으로 마주치는 과제는 '공부'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해왔다. 교육 시스템은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배움의 기쁨을 누리는 공부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배운 공부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대학교 입시를 위해 전공과 장래희망을 골랐다. 몇 년을 내내, 그 와중에 전략까지 치밀하게 세워가면서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공부 해야 한다'는 개념을 마주한다. 학교에 앉아 몇 시간씩 이해되지도 않는 개념을 암기하는 것은, 괴롭고 눈물 나고 하기 싫은 것이지만,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으면서도 그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삶의 태도는 그 이후로도 사람들을 지배한다. 반발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잘 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 어른들이 칭찬도 해준다. 여기저기 자랑도 한다. 다른 친구들이랑 비교해서 우월감도 생긴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그래서 어떤 시스템의 수혜자일수록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 지점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가 파생된다. 먼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 '네가 공부 잘 했으면 됐잖아' 하는 몰상식한 발언은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시스템에 매달리다가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결과다. 또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하는 것만 하며 살아가다보니 번아웃이 온다. 우울증이 생기고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다. 인생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자극만 추구하게 된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그렇게 공감과 배려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 서로 눈치 보고 시기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안은 끝도 없이 심화된다. 내가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면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내 위치를 차지해야 할 것만 같다. 이 세상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이렇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상태로 숨 쉬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얼마나 해야 충분한 건지, 사는 게 어떤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영원한 혼란의 시작이다.
불행히도 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린다. '취업'. 한국 사회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시선을 충족시켜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끝내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기 시작한다. 더 빨리 나아가기 위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쓸모를 차지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격을 갖기 위해 악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소진해간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러다 병에 걸린다. 죽음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벼락 같은 현실을 만난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