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겠지만
평생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언젠가 두려웠던 건 모두가 그랬을 것이라는 현실이었다. 내가 죽도록 노력해도 언제나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수두룩 빽빽해서 나는 발도 못 내밀 정도였다. 어딜 가나 줄을 세우면 그렇게 된다. 누구든 그 줄에서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더 열심히 해야 했나? 그런 의문이 절로 든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하니까. 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이건 열심도 아니라는 건가. 이상하게 마음이 바닥으로 지하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 아이들은 왜 그렇게 공부를 했을까?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뭘 위해서 그렇게 했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걸까? 여유도 없고 웃을 힘도 없고 재미 있는 것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어렸을 때 가정에서, 학교에서 받지 못한 것은 결국 무조건적인 수용이다.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 전혀 와닿지 않을 이 문장 말이다.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뭔지 안다고, 무슨 느낌인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런 지지를 받는 일이 드물다. 엄마로서, 딸로서 매번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학생으로서 공부해야 하고, 청년으로서 취직해야 하고, 연인으로서 노력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너라서 괜찮아. 매일 실수하고 넘어지고 무너져도 괜찮아.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 너는 이미 충분해. 이런 말들. 그런 느낌.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느낌. 받아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다들 모르니까. 오히려 뭐든 얻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한다. 가혹한 현실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그런 존재인 걸. 너 존재 자체로 소중한 걸. 너의 인생을 살아.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상을 쫓는 몽상가 취급을 받곤 한다. 모두가 공감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가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아예 공감조차 못 받을 때도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혹사하는 걸 보면 꼭 빛을 잃어가는 별을 보는 기분이다. 당신은 당신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열심'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혹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러고도 모자라다며 자기 자신을 고문하기까지 한다는 걸. 당신은 이해할까?
그러니 만약 지쳤다면, 도망가고 싶다면, 제발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뭐 그냥 버틸만 하고 괜찮아도 지금의 삶을 멈추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 하고 싶은 걸 해보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한다. 그런 시대다. 모두로부터 미움 받고 질타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나를 위한 선택을 겨우 한번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그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을 만큼 진짜 내 인생을 산다는 건 눈부시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니, 부디 그렇게 해주었으면 한다.
내 삶의 질은 느낌이 결정한다. 기분, 생각, 감정, 직관.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하는 기준도 결국 내 느낌에서 오는 거다.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게 전부다. 지금 우리는 나 자신을 아예 무시하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를 위한다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가진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흔들리고 무너지고 넘어질 지언정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런 놀라운 힘이 생기면 신기하게도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행복하려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된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밖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깨닫게 된다.
지금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그것은 '열심'인가, '혹사'인가? 왜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뭐가 두려워서? 뭐를 해내고 싶어서? 그런 내가 미운가? 싫은가? 그저 불안한가?
나를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