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다정하기

나는 왜 가끔 내가 죽도록 미울까

by 이도이

인간은 스스로 평균 수명을 늘려가는 경이로운 생명체가 되었지만, 그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때와 비교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을까? 가끔은 인생에 있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고군분투할 뿐이라는 감상이 든다. 본능적으로 살아남으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존재.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무엇까지 할 수 있어야 나는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될까. 삶을 만끽할 수 있게 될까. 어쩌면 지금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교훈 중 '포기'와 '수용'에 대해 배우고 있는 시기인 듯하다.


나는 언제나 나를 몰아붙이는 편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얻을 때까지 노력해야지. 더 나아가야지. 애써야지. 실수하고 미숙하고 게으른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나는 나에게 감시자 같은 존재였다. 결국 불안장애가 생기고, 일상조차 영위하기 힘들어졌을 때에야 이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 자신에게 자비로워지라는 문장을 우연히 마주쳤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끝내 한국에서 도망쳐 외국 생활을 몇 달간 하고 나서야 마침내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말이다. 왜 그렇게까지 죽고 싶었는지.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는지. 내가 미웠는지.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슬픔에 잠겨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인간 사회는 인간이 물리적으로 생존할 확률을 높이도록 발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허점도 많고, 편의성에 치우쳐 발전하면서 인간이 공동체 사회를 건강하게 이루기 위해, 혹은 개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 몹시 미흡하다.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건 인간을 닮아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인정을 하고, 어쩌면 아직 완벽한 삶을 향해 가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약간의 체념이 필요한 거다. 안 되는 것도 있다며 포기할 줄도 알고,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줄도 알고. 일이 어그러져 화가 나는 건 사실 자기 자신이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고 무슨 일을 해도, 어디를 가도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상황은 없을 거라는 씁쓸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헤어질 때 우는 건 헤어짐이 당연하다는 걸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고, 인간이 하는 일에는 반드시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며 자연스레 갈망하게 되는 행복한 미래, 그건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다지 희망찬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면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이런 허탈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실 직면은 의연하고 강인한 태도의 시초이다. 삶에 시련이 찾아와서 흔들리게 되더라도, 좀 더 쉽게 우뚝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 그런 것일 테니까. 만약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서 스스로의 삶을 구렁텅이로 내몰았더라도 금방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이 날 것이다. 나는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볼 법한 짓을 한 것일 뿐이니까. 조금 더 가벼운 기분이 들 것이다. 삶을 즐겨볼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한 번뿐인 인생 재미있는 거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 자라날 수도 있다.


오늘은 좀 힘든 날이었다. 나의 예민은 불편한 점을 찾아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고 표출하는 최고급 정밀 감지 시스템이라서, 요즘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러다 문득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내 기분과 생각과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었다. 산통을 깨는 듯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상황에 놓이면 놓이는 대로 걱정거리 시작이었다. 그래, 나는 예민해서 어딜 가든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점이 많구나. 물론 지금보다 더 나은 기분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나는 나의 정착지를 찾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행복한 미래'를 나아가는 과정이 온통 진창을 헤맨 기억뿐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고. 지난한 일상이지만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죽상을 하고 있어 봤자 내 손해니까. 점점 시간도 빨리 흐르고 나는 연말마다 착실히 나이를 먹어 가는데, 벌써 지나간 스무 살이 아까운 만큼 올해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아쉽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선천적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거나 여유롭게 대한다거나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낸다. 이렇게 글을 연재할 정도로 깊이 통찰한다거나, 예민 시스템이 울리는 경보를 무시하지 않는다거나, 내가 힘들어할 때는 여러 방법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또 삶의 방향 자체도 내가 가장 편안하고 나다울 수 있는 쪽으로 잡고 나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느꼈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정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감각할 수 있을 만큼 간절해서,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지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만큼 해내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내가 죽도록 미웠다. 그렇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통해 여러 상황과 나의 기원, 우리 사회의 역사 등을 이해하게 되었고 인간으로서 우리의 한계는 불가피한 것이구나, 받아들이게 되었다. 거기에서 묘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왕 살아 있으니 뭐라도 재미있는 거 해볼까. 어차피 할 거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까. 너무 힘들고 싫으면 다른 거 해볼까. 다른 곳으로 가볼까. 그래도 이 지구에서 인간으로 머무르는 동안 아예 못해볼 건 없다고,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가능한 선에서 다 해보자고. 나는 그렇게 나를 다독이고자 했다. 뭐, 잘 안 되더라도, 그래서 인생이지... 그래서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인 거지. 그래서 다들 마음 한편에 고독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닐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사람을 영영 쓸쓸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때로는 그런 어둠이 서로를 알아보고 기댈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아름다움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세상의 작동 방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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