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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썸머 Apr 22. 2022

베란다는 절대 확장하면 안 된다

베란다를 없애실 건가요?

베란다는 꼭 필요한 공간

서양의 주택에서 테라스나 발코니로 사용되던 공간이 아파트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베란다이다. 서양 영화나 드라마의 테라스나 발코니에 티 테이블을 두고 휴식을 취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간의 본래 용도는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멋진 경치가 더해진다면 휴식의 공간으로 잘 활용할 수 있겠지만, 요즘 아파트 베란다의 풍경은 맞은 편의 또 다른 아파트일 테니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거실을 더 넓게 쓰기 위해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신축 아파트는 아예 베란다를 확장해서 시공하기 때문에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려면 구축 아파트를 둘러봐야 한다.


하지만 휴식의 공간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도 베란다는 꼭 필요한 공간이다. 바깥과 집안을 이어주는 중간 공간인 베란다는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겨울의 찬 바깥공기가 집안에 바로 유입되지 않도록 완충작용을 하는 곳이다. 덕분에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외부의 소음과 먼지를 베란다에서 한번 걸러주기 때문에 집 안에 유입되는 먼지와 소음을 줄여준다. 베란다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의 냉난방비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1년 동안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아보니 정말 베란다가 없던 20평 아파트보다 지금의 30평 아파트의 냉난방비가 더 적게 나왔다.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공간

만약 아파트에 불이라도 난다면 대부분 현관을 지나서 계단으로 대피할 것이다. 저층에 사는 사람들은 비상계단으로 탈출하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그런데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계단으로 내려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계단에 갇힌 유독가스에 노출되기 쉽다. 계단에는 창문이 아주 작게 있거나 없어서 바깥의 신선 공기가 적게 유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상계단 쪽은 바깥에서 구조하는 소방대원들의 눈에 띄기도 매우 어렵다.


거주하는 세대보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유독가스와 연기는 급속도로 상층부로 올라간다. 이를 굴뚝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현관문과 방화문이 있다. 바깥으로 탈출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연기가 가득하다면 재빨리 문을 닫아 유독가스의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베란다에 가벽으로 설치된 방화벽을 뚫고 옆세대로 대피해야 한다.


1992년~2000년대 중반에 시공된 아파트는 베란다 경계벽을 경량 칸막이로 만들어서 화재 시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붙박이 장이나 세탁기 등을 설치했다면 대피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방화벽 부분은 비워두고 사용하는 게 가장 좋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시공된 타워형 아파트는 옆집과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경량 칸막이 대신 대피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으니 평상시에 우리 집 대피공간이 어디인지 꼭 알아둬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피공간을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신선한 바깥공기가 가장 많이 유입되는 공간인 베란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좋다. 거실 내부와 베란다 사이의 문을 닫아 유독가스의 유입을 최소화하고 그동안 베란다의 창문을 통해 열심히 구조의 손짓을 하면 보다 빨리 눈에 띄어 구조될 수 있다. 이렇듯 베란다는 휴식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공간이다.  


베란다 로망

베란다가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건 알지만 누구나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사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았던 신혼집도 베란다가 없었던 빌라였고, 그 후에 이사한 아파트도 베란다가 없는 소형 아파트였다. 베란다가 있던 집에서 살다가 결혼 후 없는 집에서 사니 비로소 베란다가 소중해졌다. 친정집 베란다는 엄마가 식물들을 키우는 공간으로 활용하셨다. 어렸을 땐 엄마가 베란다를 어떻게 쓰시든 내가 직접 쓰지 않는 공간이니 베란다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주부가 되고 나니 로망의 공간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사할 시기가 되어 1순위에 둔 집이 바로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였다. 베란다도 있고 햇살도 가득한 집을 찾아서 오랫동안 발품 팔아 구한 집이 바로 이 집이다. 이 집의 넓은 베란다를 보자마자 내 집이구나 싶어서 바로 매매 계약했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베란다가 있는 집이 생겼다. 아직 아무것도 고쳐진 게 없는 허름한 구축 아파트의 베란다 공간을 보며 머릿속으로 멋진 베란다 인테리어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사한 이후 반년 동안 조금씩 베란다를 꾸몄다. 식물도 많이 들였고, 원목 책장도 가져다 놓고, 커튼도 달아줬다. 그리고 바닥은 유행하는 조립식 타일로 꾸몄다. 아직 더 들이고 싶은 식물이 많았지만, 우선 이 집에 맞는 식물이 어떤 식물 일지 몰라(내가 안 죽이고 쉽게 잘 키울 수 있는 식물) 생각했던 식물의 양보다 절반 정도만 들여서 키웠다.


반 년 동안 다양하게 배치하며 가꾼 우리집 베란다 정원


사라져 버린 베란다 로망

우리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사를 했고, 이제 1년이 지나 봄이 되었다. 반년 동안 베란다를 꾸몄고 그 후 나머지 반년 동안은 방치되어 그저 빨래를 너는 공간, 또는 식물을 키우는 공간 정도로만 사용했다. 그렇다고 식물을 잘 키운 것도 아니다. 물을 너무 줘서, 혹은 햇볕을 너무 쬐어서 식물의 절반은 시들시들해져 갔다. 정남향 고층이라 신경 안 쓰고 대충 키워도 잘 자랄 것 같았던 식물들이 간신히 목숨만을 유지하고, 마치 방치된 창고처럼 쓰임새를 잃어가고 있는 베란다는 봄이 왔음에도 봄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베란다를 외면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베란다 로망을 가졌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방치되어 있는 베란다를 보며 언젠가 청소하고 정리를 다시 해야지 하고 늘 마음만 먹다 보니 어느덧 봄이 왔고, 봄비가 내렸다. 촉촉한 봄비를 바라보며 드디어 결심했다. 베란다를 청소하고 다시 가꾸기로.


조립식 타일,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하나 설레는 마음으로 조립했던 조립식 데코타일을 다시 하나하나 분리해서 걷어내고, 그 아래 겨우내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쓸어냈다. 밖에서 들어온 먼지,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에서 떨어진 먼지, 식물의 낙엽 등 생각보다 먼지가 더 많았다. 먼지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먼지가 이렇게 쌓인다는 것을 알면서 또다시 데코타일로 베란다를 덮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중고장터에 내놨고, 한때 우리 집 베란다를 예쁘게 꾸며줬던 조립식 데코타일들은 그날 오후에 바로 비워졌다. 그저 예쁜 것만 생각하고 들인 조립식 데코타일은 반년만에 비워졌다.

비워진 조립식 타일
지금 우리집 베란다의 모습 (관리가 힘든 조립식 타일 대신 가벼운 러그 한 장을 깔아주고 주기적으로 세탁하고 있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은 저마다 끝없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 물건 하나를 들일 때, 과연 내가 이 물건을 끝까지 잘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들이면 선뜻 쉽게 들이기 힘들어진다. 자주 걷어내서 아래에 쌓인 먼지들을 잘 청소해줄 수 있다면 문제없는 일이지만, 데코타일 위에 올려둔 식물들을 전부 들어내고 다시 타일을 분리하고 청소하고 조립하고 식물을 재배치하는 일은 연간 행사일 정도로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미리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들였던 조립식 데코타일. 이번 일을 계기로 물건 하나를 들일 때 내가 얼마나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에겐 몇 개의 화분이 적당할까?

식물도 마찬가지다. 예뻐서, 키우기 쉽다고 해서 무작정 들인 식물들이었는데, 절반은 비워졌다. 우리 집에 맞는 식물, 내가 잘 관리하며 키울 수 있는 식물들만이 남았다. 더 들일 생각 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키우기로 했다. 올봄, 무럭무럭 자란 프테라스고사리와 무늬 콩고는 분갈이를 통해 네 개가 되었고, 하나였던 아이비는 분갈이로 3개가 되었다. 오렌지 자스민은 열매 3개를 맺어서 조만간 열매를 심어줄 계획이다. 이렇게 식물을 새로 더 들이지 않아도 잘 키우는 식물이 자라서 화분이 두배가 되니 저절로 늘어나게 된다. 관리하기 쉬운 물건만 간직하듯 식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키워야 부담이 아니라 힐링이 된다. 이 부분은 키워봐야 알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욕심내서 많이 키우기보다는 조금씩 들여가며 본인을 파악하는 게 좋지 않을까.


거실을 넓게 쓰기 위한 베란다 확장?

대부분 거실을 넓게 쓰려고 베란다를 확장하는데 많은 물건을 더 많이 두기 위한 확장은 추천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공간인 베란다를 위해 거실의 물건을 줄여보는 건 어떨까. 물건을 더 많이 두기 위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물건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 물건들의 절반은 아마 없어도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베란다를 그대로 두고 거실을 좀 더 비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새로운 베란다 로망

데코타일도 비웠고, 물청소도 깨끗하게 해 둔 베란다를 바라보며 역시 뭐든지 미니멀한 게 제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면, 그저 생각 없이 예쁘게 꾸미려는 생각보다 기본 공간을 비워서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내게 새로운 베란다 로망이 생결다. 내가 잘 키우는 식물 화분 몇 개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미니멀 베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의 공간이 되고 우리 집을 따스하게 또는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공간.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아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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