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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썸머 Apr 15. 2022

주방이 없는 집

크기만큼의 물건을 소유하는 공간

세식구가 사는 우리집 주방의 모습

나는 주방이 없는 집을 원했다. 

집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게 싫었고, 어질러진 주방을 보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해서였다. 20평짜리 작은 집에서 살 때, 주방이 집에 비해 컸었다. 평수에 비해 수납공간도 많았는데 그 많은 수납공간을 꽉꽉 채워 넣고 살았었다.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에서 견적으로 보러 오셨는데, 그냥 집을 휙 둘러보시더니 집도 좁고 겉보기엔 가구도 그리 많지 않고 해서 1톤 트럭 한 대 정도의 견적을 뽑았는데, 이사 당일이 되고 나서 이삿짐센터에서 깜짝 놀라셨다. 아니 이 좁은 집에 이렇게나 물건이 많다니! 가져오신 수납 바구니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서 박스에도 채워 넣었다. 집에 있는 모든 붙박이 수납장을 빈틈없이 채워 넣고 살았던 결과였다.


주방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을 두고 살면서 '주방 없는 집'을 꿈꾼다고?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이사 갈 집은 구축 아파트여서 주방에 보조 주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조 주방을 메인 주방으로 쓰고, 집 안의 주방 공간은 텅 빈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건축이고 뭐고 아무것도 몰랐던 내 생각은 그랬다. '집 안'에 주방을 두지 않고 베란다로 나가야 주방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을 철거해보니 그건 불가능했다. 주방엔 수도 시설이 있었고, 환풍구가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게 아니라면 '다음에 이사 오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를 해야 했다. 주방 싱크대를 설치하시는 분과 논의를 한 끝에 최소한의 크기로 주방을 제작하기로 했다. 줄일 수 있는 한 최대한 줄여서 만든 주방!


이사하기 전 기존 주방

이사한 30평 집의 주방은 20평 집과 비슷한 크기의 주방이었다. 빈틈없이 모든 공간을 효율적으로 수납하기 위해 수납공간으로 가득 채워진 주방.

보기만 해도 답답했고, 최대한 철거를 해서 트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철거된 주방

그래서 주방의 모든 것을 다 철거해버렸다. 수도 부분과 환풍구만 나중을 위해 일단 남겨두었다. 집안의 메인 주방 공간에서는 재료 손질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설거지를 위한 개수대만 필요했다.


새로 만들어진 주방

최소한의 크기로 제작된 주방. 전체적으로 상부장을 다 없애고 싶었지만, 환풍구 때문에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상부장도 꼭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


주방 상부장

상부장엔 상비약과 텀블러, 도시락, 컵, 커피와 차 등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잘 사용 중이다. 상부장이 없었으면 없는 대로 또 다른 곳에 보관했겠지만 있고 보니 안 그래도 수납공간이 없는 우리 집엔 꼭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미니멀한 주방을 꿈꿨지만, 아이도 있는 집인지라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은 있어야 했다. 주방이 좁아서 좋은 점은 나머지 공간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싱크대를 축소하니 식탁을 두는 공간이 넓어져서 6인 식탁도 충분히 들어갔다. 주방은 작은 주방을 원했지만 식탁은 커다란 식탁을 원했던지라 세 식 구이지만 6인 식탁을 샀었다. (식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좁은 주방은 어쩔 수 없이 미니멀하게 살게 했다.

주방엔 서랍은 딱 3칸이 있는데, 맨 위는 수저 및 조리도구, 그리고 그 아래는 일회용품, 그리고 맨 아래에는 접시와 그릇을 보관한다. 칸이 제한적이라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예 더 이상 물건을 들이기가 힘들다. 더 들이고 싶으면 기존의 물건을 비워야 한다. 다행히(?) 식기 욕심이 전혀 없는 지라 신혼 때 샀던 그릇과 식기들을 아직 그대로 사용 중이며, 거의 늘리지 않은 채 유지 중이다. 어쩌다가 깨트린 식기가 몇 개 있어서 오히려 수는 줄어들었다. 4인 식기세트를 구매했기에 세 식구가 쓰기엔 몇 개가 없어져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맨 아랫칸에는 자주 사용하는 그릇들만 보관하고 있는데 냉면기 같은 큰 그릇과 큰 접시 등은 개수대 아랫칸에 보관한다.


수저 등을 보관하는 맨 윗 칸 서랍
일회용품 등을 보관하는 두번째 칸 서랍
자주 사용하는 그릇을 보관하는 맨 아랫칸 서랍


그리고 개수대 아래에는 기타 주방 관련 물품들을 보관한다. 개수대 아래를 정리하는 선반 종류가 시중에 다양하게 나와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며 살다 보면 새로 무엇인가를 사는 게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새로 들인 물건에 '책임감'이라는 마음의 짐을 얹어보면,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기존의 물건으로도 대체가 가능한 것인지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만든다.


집 안의 주방이 좁아졌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보조주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를 전혀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 중이라 예쁜 공간은 아니지만 아주 실용적인 공간이다. 이사하기 전 이 집의 보조주방을 보자마자 여기를 주방으로 써야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집의 구조상 보조주방에 세탁기를 둬야만 해서 보조주방을 생각보다 좁게 쓰게 되었다. 그래도 요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서 아직까지 만족하고 사용 중이다. 이케아에서 구입한 작은 조리대는 인덕션과 오븐을 두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작은 조리대의 아랫칸에는 오븐을 두고, 위칸에는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수납한다.


이 작은 보조주방 덕분에 언제나 요리 냄새가 적은 청정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보조주방에 냉장고 두는 공간이 있어서 냉장고를 보조주방에 두니 집에서는 냉장고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서 좋다.


좁은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적게 소유하게 만든다. 좁은 주방 덕분에 '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만큼의 주방 물품만 두고 살게 되었다. 적은 살림은 마음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식기의 개수가 적기 때문에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해야 다음 끼니를 준비할 수 있고, 덕분에 늘 청결한 주방을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건으로 가득한 복잡한 주방은 주부의 마음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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