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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썸머 Apr 18. 2022

압력밥솥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전기밥솥만 없어도 주방이 넓어진다

우리 집에는 전기밥솥이 없다

자취하던 20대부터 30대 초반의 신혼 때까지 나는 줄곧 전기밥솥을 사용했었다. 사용이 간편하고 언제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전기밥솥을 들였던 것 같다. 압력밥솥과 다르게 전기밥솥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백미' 또는 '잡곡' 모드만 사용했고, 결국 전기밥솥을 비우는 날까지 다른 메뉴는 거의 사용해보지 못했다.


내가 전기밥솥을 비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척' 때문이다. 전기밥솥을 세척할 땐 모든 부품을 분리해서 하나하나 따로 세척해야 하는 게 늘 번거로웠다. 그러다가 예전에 미국에서 살 때 항상 해 먹던 냄비밥이 생각났다. 전기밥솥을 구하기 어려워서 냄비로 밥을 했는데 냄비밥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쭉 냄비로 밥을 했었다. 그랬던 경험이 떠오르다 보니 여러 기능도 필요 없고 세척도 번거로운데 굳이 계속 전기밥솥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세척이 보다 편리한 압력밥솥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창고에 보관해둔 압력밥솥이 문득 생각났다.

5년째 사용 중인 휘슬러 압력밥솥

그 밥솥은 오래전에 아빠가 해외출장 가셨다가 사 오신 휘슬러 압력밥솥이었다. 전기밥솥을 사용하느라 압력밥솥은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인덕션이나 하이라이트를 사용한다면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압력밥솥. 5년 간 압력밥솥을 쓰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본다.


전기밥솥만 없어도 주방이 넓어진다

전기밥솥의 단점은 바로 자리 차지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전기밥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콘센트가 가까운 자리에 둬야 하므로 전기밥솥의 위치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싱크대에 전기밥솥의 자리를 따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싱크대 한 칸 전부를 차지하게 되는 전기밥솥! 그런데 압력밥솥을 사용하게 되면, 사용 후 주방 수납칸 어디든 넣어서 보관이 가능하다. 먼지가 쌓이는 걱정도 없다. 전기밥솥만 없을 뿐인데 주방 수납 한 칸의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방 살림을 하면 그 한 칸이 얼마나 큰 공간인지 알 것이다. 일회용품을 보관하는 공간, 냄비를 넣는 공간, 식재료를 보관하는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 한 칸! 수납공간이 부족한 주방이라면 압력밥솥의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도 있다.


압력밥솥 세척하는 방법

압력밥솥은 구조가 간단하다. 부품이라고는 솥, 뚜껑, 고무패킹이 전부이다. 그래서 세척과 건조가 쉽다.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관리가 쉬운 것도 한몫한다. 녹슬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다른 그릇과 냄비처럼 일반적인 설거지를 해주면 된다. 그러다 오염이 심해졌을 때 '과탄산소다'와 '철수세미'를 사용해서 세척해주면 된다. (일 년에 몇 번만 이렇게 세척해줘도 새것처럼 유지할 수 있다)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후 과탄산소다 2~3 스푼을 넣어준다. 거품이 넘칠 수 있으니 물은 냄비의 절반 정도만 채워 넣어 끓여야 한다. 위 사진의 냄비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냄비인데 주로 삼계탕을 끓일 때 쓰는 냄비이다. 압력솥과 크기가 비슷해서 압력솥이 다 잠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척하는 데는 문제없다.



이렇게 다 잠기지 않는 경우에는 국자 등으로 물을 계속 끼얹어주면서 끓이면 된다. 오염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1~2분만 끓여도 된다. 바로 건져내서 철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면 새것처럼 묵은 때가 다 벗겨진다. 오염도가 심할수록 더 오래 끓여주면 된다.



세척 전
세척 후

집에 있는 모든 스테인리스 제품을 이렇게 세척해주면 언제나 새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할 때마다 이렇게 세척해줘야 하는 게 아니라 오염 정도가 눈에 띌 만큼 심할 때 이렇게 세척해주면 된다. 부지런하다면 자주 이렇게 세척하면 좋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겐 1년에 두세 번 이렇게 세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리가 될 것이다.


전기밥솥보다 저렴하게 관리할 수 있는 압력밥솥

전기밥솥의 내솥은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부품이다. 사용하면서 코팅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솥의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자주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또는 이러한 사실을 아예 모르고 코팅이 벗겨진 내솥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압력밥솥은 이러한 걱정 없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압력밥솥은 스테인리스이기 때문에 녹슬거나 코팅이 벗겨질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압력밥솥에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부품이 있는데 바로 고무패킹이다. 이건 전기밥솥도 마찬가지. 고무패킹의 교체 비용은 전기밥솥은 내솥 교체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해서 부담 없이 주기적인 교체가 가능하다.


압력솥은 전기밥솥보다 밥을 더 빨리 짓는다

전기밥솥으로 백미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제품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30~40여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압력밥솥은 15분이면 밥을 짓는다. 물론 쌀을 불려주는 귀찮은 과정이 있긴 하지만? 그냥 쌀을 씻어서 물에 10분 이상 담가 두기만 하면 되니까 요리 전에 쌀부터 불려주고 재료를 손질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쌀 불리 시간도 없다면, 처음부터 밥을 센 불이 아니라 중간 불로 하면 된다. (나는 평소에도 9까지의 세기 중 7정도의 세기로 밥을 짓는다) 그리고 추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낮추면 되는데, 하이라이트를 사용한다면 잔열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걸로도 충분히 뜸을 들일 수 있어서 추가 올라오면 바로 불을 끄면 된다. 인덕션 또한 잔열이 남아있긴 하지만 하이라이트보다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약불로 1~2분 정도 더 있다가 꺼주면 된다. 가스레인지는 불 조절이 조금은 더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약불로 5분 정도 더 있다가 꺼주면 된다. 자꾸 해보면 실력이 늘어나서 압력솥의 사용이 더욱 쉬워진다.  


자꾸 압력솥의 김이 샌다면 꼭 확인해봐야 하는 것

압력솥 사용 초보자가 제일 난감해하는 것은 바로 '김이 새는 것'일 것이다. 추는 올라가지 않고 압력솥 옆으로 김이 새서 밥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나도 그런 적이 많아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밥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김이 샐 때 가장 먼저 확인해봐야 하는 것은 바로 '고무 패킹'이다. 고무 패킹이 압력솥에 밀착되었는지 꼭 살펴봐야 한다. 제대로 밀착시키지 않으면 김이 샐 수 있다. 제대로 밀착시켰음에도 김이 센다면 고무패킹이 오래되어서 그럴 수 있다. 보통 2년 정도에 한 번씩 고무패킹을 교체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모르고 계속 사용하다 보면 김이 자꾸 새서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없다.


뚜껑에 결합 후 이렇게 글자가 보여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고무패킹의 방향을 확인해주어야 한다. 압력솥을 계속 사용하다 보니 고무패킹에도 위아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쓰는 휘슬러 압력솥의 경우, 고무패킹의 글자가 보이는 쪽으로 부착해야 김이 새지 않았다. 이 방법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무패킹을 새로 사서 갈았음에도 김이 새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밥을 하다가 내가 직접 터득한 방법이라 모든 밥솥에 적용되는 방법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혹시 이 방법으로 김새는 것을 막았다면 알려주세요)


전기밥솥보다 다양한 요리를 즐기게 해 준 압력솥

딱 한번, 전기밥솥으로 갈비찜을 요리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갈비찜 요리 후 기름 범벅이 된 전기밥솥을 힘들게 세척한 뒤로 다시는 전기밥솥으로 밥이 아닌 다른 요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척이 보다 간편한 압력솥을 사용한 뒤로는 죽, 찜 등의 요리에 보다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주방용품을 들이기 전에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바로 '세척이 용이한가'인데, 이러한 이유로 전기포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냄비로 물을 끓이고 세척하는 게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순간의 편리함보다는 사용 후 세척의 편리함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압력밥솥은 밥 이외의 요리도 세척 걱정 없이 할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맛도 더 좋으니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고민한다면 압력밥솥을 늘 추천하게 된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도 정답은 없지만 사용의 편리함과 공간의 활용도만을 두고 따지자면 압력솥이 승리하지 않을까.


압력밥솥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5년째 고장 없이, 오염 없이 잘 사용 중인 나의 압력솥. 이렇게 글로 남겨두니 더욱 소중해지는 주방용품이 되었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관리해서 잘 사용 중인 물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직도 내게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남아있다. 그런 물건들은 비워내고 내가 잘 사용하는 물건을 골라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다 보면, 그 물건은 나에게 더욱 소중한 물건이 된다. 소중한 물건을 잘 사용한다는 것은 내게 필요하고 내게 맞는 물건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고, 이는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모든 메뉴를 잘 사용하지도 않았고 관리도 어려워서 늘 마음속의 짐 같았던 전기밥솥을 비우고 압력밥솥을 사용하면서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용부터 관리까지 내가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물건만 들이고 사는 게 바로 진정한 '미니멀라이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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