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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 없이 달리기

기록 없는 러닝의 장점

by 두어썸머

3년 차 러너.


3년째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다른 운동은 나와 맞지 않아서 중도 포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달리기만큼은 꾸준히 하게 된다. 달리기는 그저 유산소운동이 아니다. 정신도 그만큼 맑게 해 준다. 달리는 동안 떠올리는, 혹은 무념무상인 모든 상태들이 흐트러지고 복잡한 생각들을 씻어내거나 정리해 둔다. 단순히 운동이기만 했으면 금방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찌 되었든 운동화를 신고 나가게 만드는 건, 잡념을 떨쳐버리고 싶어서일 거다. 근심걱정을 잠시라도 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그리고 3년 동안 어플로 내 러닝을 기록해 왔다. 이변 없이 늘.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러닝 어플이 오류가 난 것이다. 아무리 재시작을 해봐도 먹통이었다. 몇 번 시도해 보다가 그냥 달렸다. 3년을 달렸지만 어플을 켜지 않고 달린 건 처음이었다.


속도, 거리, 케이던스…. 나도 모르게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던 것들이다. 뛰면서 마주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면 기록 때문에 은근히 짜증도 났었다. 내 앞에 케이던스가 느린 사람이 달리고 있으면 그 영향을 받을까 싶어 앞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의 기록이 한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정확히, 기록 없는 러닝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 같은 ‘인증’의 시대에 기록 없는 운동이라니. 선뜻 실천하기 매우 망설여지는 선택이다. 내 경우에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경험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어플을 켜지 않고 달리니,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우선 내 속도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아주 조금은 더 무리해서 뛴 적도 많았는데, 내 호흡과 컨디션에 맞게 적당한 속도로 달리게 되었다. 조금 느리게 달리며 천천히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좀 더 이해심 있게 견딜 수 있었다. 진정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는 기분이 들었다. 운동이 아니라 즐거워서 달리는 기분.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더 쉽게 달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면 몸도 정말 가벼워지는구나.


앞으로도 종종 ‘기록 없는 달리기’로 진정한 자유를 맛볼 것이다. 한 번도 어플 없이 달려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그렇게 달려볼 것을 권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러닝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욱 애정을 담아 달리게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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