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4 - 살아낸다는 말
새벽같이 자전거 위에서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던 소년
전 날 신문이 왜 그다음 날 오냐며
"신문이 아니라 구문이냐"던 농담 같은 손님의 신고로
오늘은 이 동네 다음날은 저 동네
한 시간이라도 아껴보고 싶어 부린 잔꾀가 들통나 매일같이 얻어맞았다.
아버지를 따라 묻은 시체도 몇 백이라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이 되어
그 숨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누가 삽질을 하고, 누가 덮고, 누가 기도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오늘도 밥벌이를 한 셈이었다.
"형복이 왔냐! "
"왔습니다, 왔어요— "
"안행복이! 아잇, 재수 없어! "
이름이 재수 없다는 이유로
죄 없는 아이 머리를 콩 쥐어박는다.
막걸리와 빵 우유 일개 목수들의 간식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든 차가운 칼바람 속이든
돈 앞에선 누구나 공평하게
공평 속에서도 나눠져 있는 위아래가
그 서열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어려서부터 난 놈이라—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 했다.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자만심이 나이를 억울케 한다.
"저 이거 시켜줘요 "
"야 이거나 잡아 뭔 어린놈의 자식이 "
넌 아직 아니라고 머리를 쥐어 내리며 꾸짖는다.
"아 왜 때려!!!!!!"
"이 자식이!!!"
머리를 몇 번 더 쥐어박히고는 씩씩거리며
목수들 옆에 들러붙어 뭐라도 눈에 담는다.
눈으로 훔치고 , 손끝으로 익혔다.
그러 어느샌가 중학교 졸업 동시에 졸업한 기술학교
그곳에서 배운 도면을 읽는 눈과 손
여기선 그 어떤 기술보다 인정을 받았다.
기술은 하면 는다—
지식이 준비된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
그 자리의 왕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도면을 읽고 짜고 아는 체하니
어린 내가, 나를 시다로 부리던 공사판 오야지가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았고,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행복아, 니 군대 가나 "
"응 아저씨 나 빨리 갔다 와서 일 시작할 거야
시간이 아까워요, 시간이. "
현장 책임자로 1년이 흘러 열일곱
군대 가기엔 이른 나이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다.
내가 어떻게 서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떤 게 현명한 길인지
나를 붙잡아 조언해 주는 참 어른이 없었다.
삶의 과제를 스스로 풀어 빨리 돈을 벌어야 했다.
"이게 철들기고, 돌아삤은 기고— 참 알 수가 없네"
"아저씨 나이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핑계를 댈 구실이야"
그렇다. 적어도 나에겐
나이가 어려서 못하는 것
나이가 많아서 잘하는 것도 없다.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지 않은 자의 핑계일 뿐이었다.
세상은 나에게 견디지 못할 고통은 주지 않는다는 말로 매일을 위로하며
그 고통만큼 내가 강하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악착같이
"아니 저 아저씨 저걸 왜 저기다 가져다 놓는 거야
아저씨!!!! 아저씨~!!!!"
그래, 나이가 대수랴 그 세상 어린놈의 자식이
현장 잘못되는 꼴은 못 보는 반장이다.
철근을 이고 가는 작업꾼 하나가 이쪽을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쳐 놀란 토끼눈이 된다.
"... 형?"
...!
작은누나와 둘이 살던 그 시절이 지나
타지에서 현장반장 노릇하며
그렇게 몇 년 만에 마주한 작은형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part-4 살아낸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