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 그냥 그렇게 자랐다
퉁퉁 부은 코끼리다리. 물에 불린 듯 불어 터진 손
삯일에 지쳐 금이 간 벽처럼 상한 얼굴의 누이는
제 몸 하나 돌볼 겨를조차 없이
저보다 어린 동생이 혹여 배곯아 기를 못 펼까
새벽마다 도시락을 챙긴다.
"도시락 가져 가-!"
"됐어!!! "
"오늘 맛있는 거 넣었어!"
"아 됐다니까 아-!!!"
맛있다 한들 보리밥이라도 들어가면 다행인 게 전부였던 도시락에
뭐가 더 들어야 맛있는 도시락일까
'지도 학생이면서'
그 시절의 치기는 고마운 마음이 미안한 마음이 되어
미운생각이 되어버린다.
"너는 일하지 말고 공부해 초등학교는 꼭 나와야 돼"
"나만 학생이야? 너도 학생이야! "
어린 입에서 튀어나온 반항에
내 말에 대꾸를 하고 싶어도 꾹 참는 누이였다.
사내도 공부를 안 시키는 가난한 집에서,
계집이라고 공부를 시켜줄 리 있겠는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누이의 마음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이 어린 동생이지만 사내라는 이유로 형과 다를 바 없이 대들었다.
저 잘 살라고 쏟아낸 누이의 정성을
길가에 굴러가는 개똥처럼 가볍게 여긴 채
그러면서도 그 개똥만도 못하게 여긴 도시락을 꼭 쥔 채, 학교로 향한다.
“뚱보다! 코끼리 다리다!”
아이들 무리가 깔깔 웃으며 놀렸다.
표적은 누이였다.
퉁퉁 부은 다리와 상처투성이 손을 가진 열셋이라고 볼 수 없이
세월을 맞은 어른의 모습인 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꾹 참고, 울지도 않고, 그냥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 침묵이 내 가슴을 후벼 파듯 짓눌렀다.
“자, 오늘은 우리 반에서 꼭 필요한 친구들에게 노트와 펜을 나눠주겠다.”
교탁 위에 엉성하게 쌓인 공책 더미와 펜 몇 자루.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기대라기보다는 호기심, 그리고 속삭이는 웃음.
“ 안형복 ”
나의 이름이 불렸다.
순간,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가난한 아이.’
그 한마디가 교실 안에 울려 퍼진 거 같이 파동이 일었다.
천천히 앞으로 나가 노트와 펜을 받아 드는 손끝이
뜨겁게 달아올라 가슴이 미었다.
고마움이 아닌 수치심
아이들의 웃음소리, 옆 친구의 힐끗거림, 교탁 앞에 서 있는 순간의 무게.
받아 든 공책 한 권과 펜 하나가, 그토록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음이
종이 울리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가난에게 잡아먹히는 삶
우리 집은 왜 이토록 가난한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사이,
아침에 누이가 챙겨준 정성이 떠올라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장조림이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맛있는 도시락 맞네.. '
막 하나 집어먹으려던 순간
"야 안형복! 너네 집 거지지?
거지라서 그 노트랑 펜 받은 거잖아! "
"뭐 주워 먹냐 거지야!"
아까 누이를 놀리던 무리들이다.
나이만 나보다 많지 하는 짓은 동네 개만도 못했다.
"너네 집은 거지 너이 누이는 뚱보~"
손끝에 차갑게 돌멩이가 쥐어졌다.
“그만해라!”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돌이 허공을 가르며
놀리던 아이의 머리를 찍었다.
웃음소리가 멎고, 곧 울음이 터졌다.
아이들은 흩어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건
두려움과 스스로를 향한 후회였다.
나는 돌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누나를 대신해 쏟아낸 분노이자, 억눌린 모욕감의 덩어리
누나와 나를 지키려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마음속 깊은 흉터가 자리 잡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철없는 나는 그 노트를 펼쳐보지 못했다.
글씨 한 줄 쓰기도 전에 이미 그 노트는 가난의 낙인이 되어 있었다.
매번 나눠주던 그 노트와 펜은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책상 서랍 속에 깊이 숨겨져
펼쳐지지 않은 하얀 종이와 닳지 않은 검은 펜촉은
희망과 절망이 한자리에 겹쳐 있듯,
가난과 수치심을 고스란히 품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는 누나를 놀리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냈다.
약한 동물끼리 등을 내밀어 붙여 앞을 경계하듯
단 둘 뿐인 집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part-3 그냥 그렇게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