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 가난보다 두려웠던 단어, 포기
땀에 젖은 작업복, 굽은 어깨,
그 속에서 예전 형의 웃음이 스치듯 보였다.
그렇게, 세월에 묻혀 있던 작은형을 다시 만났다.
"형복아 잘 지냈냐?"
"형!! 어떻게 지냈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여전히 착한 냄새가 나는 형이다.
괴롭히는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해 나가라 나가라 손짓하던 형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항상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을 미워하던 큰형과, 세상에 미안해하던 작은형
대비되는 두 형의 삶의 태도는 안타까울 만큼 달랐다.
"형 누가 여기까지 데려왔어? "
"경남이 삼촌 소개로.. "
"경남이 삼촌이구나... 형 나 곧, 군대가 "
"벌써?"
형을 만나기도 무섭게 얼마 안 가 군대를 가야 하는 처지였다.
안타까운 시간에 매일매일 틈날 때마다 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군 입대 이틀 전, 형은 낡고 찢어진 겉옷 안쪽 주머니 사이에서
담배곽을 꺼내더니 돌돌 말아놓은 손때 묻은 돈을 내밀었다.
"형복아 이거 받아서 용돈으로 써라"
현장 반장인 동생에게 주는 형의 용돈이었다.
일꾼으로 돈을 받아 아껴 고이 말아둔 돈
형으로서 어떻게든 동생을 챙겨주고 싶어 함이 안 받을 수 없는 돈이다.
"고마워 형, 잘 쓸게 "
손바닥 안에 남은 그 따뜻한 체온이
밤새도록 식지 않았다.
처음이라 어색한 군복, 새로 받은 군화는 손바닥이 들어갈 만큼 컸다.
손목이 뻐근하리만큼 경례하고 , 얼차려가 쏟아졌다.
땀냄새 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내가 이곳에 왜 있는지 다시 묻고 있었다.
"이 새끼가 정신 안차렷!!! 차려엇!!! 열중 쉬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땀방울이 군복 위를 타고 흘렀고,
나는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다.
"팔 굽혀 펴기, 준비!"
흙냄새에 땀 냄새가 엉켜 숨조차 막혔다.
"하나! 둘! 셋!...."
숫자가 길어질수록 사람 소리보다 숨소리가 더 컸다.
팔이 덜덜 떨렸다.
몇몇 동기들은 버티지 못해 나뒹굴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팔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에 눈앞이 번쩍거렸다.
"그만! 일어서!"모두 동시에 무너졌다.
땅 위엔 땀이 흘러 고였다.
나도 숨이 막혔지만,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살아 있다는 게, 그냥 웃겼다.
휴가 며칠을 앞둔 어느 날,
처음 통화가 된 사람은 큰형수였다.
"여보세요?"
"삼춘! 저예요!"
"큰형수? 아니.."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말을 뒤덮는다.
"작은형이 죽었어요! 아무도.. 사후처리를 안 했어요
형 시신도 아직 그대로예요."
무감각한 형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 뭐라고요?"
그 말이 내 귓속에서 천천히 부서져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찢어진 작업복, 굽은 어깨,
땀에 젖은 손으로 내게 돈을 쥐여주던 형의 모습이 번졌다.
형의 시신이, 아직 땅속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 채
어딘가에 놓여 있을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손끝이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깨달았다.
가난은 누군가의 죽음조차 지나치는 사회의 공기였고
죽음보다 더 차가운 건 무관심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part-5 가난보다 두려웠던 단어,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