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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16. 2021

오늘도 앤은 달린다

최근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빨간 머리 앤 이다.

스트리밍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나의 새벽을 앤에게 바쳤다.

그녀 때문에 매일 밤 질질 짜다가도 적재적소에 움트는 극 중 인물들의 다정함에 희망을 엿보는데..

그러다 보면 이제는 멀어져버린 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매회차를 줄기차게 스트리밍 하면서 유독 눈에 걸리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어느새 화면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쟤 왜 또 뛰어...(????)”



그렇다.

앤은 뛴다.

아니 정확하게 뛰쳐나간다.. 는 표현이 맞겠다.

기쁠 때도 속상할 때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내달린다

농장의 볏더미 속으로, 숲 속으로, 자신의 침대 속으로... 그리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눈물을 찍어낸다.


그녀는 왜 뛰쳐나갈까?

(제작자가 아니기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자꾸만 ‘걷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닮은 듯하다.

감정의 모양과 크기가 자신을 압도할 정도로 가득해서 어떤 식으로든 ‘치유’ 혹은 ‘해소’가 필요한 것이다.


한없이 내 달리다 보면 부풀었던 감정만큼이나 심장박동도 요란해지는데

그때 느끼는 완전한 슬픔이나 기쁨을 나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지나, 몸과 마음이 (보통의) 정상범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치유’나 ‘해소’의 과정이 되는 게 아닐까

또 내달리기 같은 건 세상과 나, 둘만 완벽하게 남겨지는 체험이 되므로

앤처럼 감정이 풍부한 소녀에게는 잘 들어맞는 도피처이자 은신처가 되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한 달간 머무를 무렵,

목장 시작점에서부터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던 기억이 있다.

심장이 8비트 유로댄스를 추고 세상이 2배속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때 숨을 크게 내쉬었던 건 호흡이 가빠져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을 눌러서, 숨으로나마 뱉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놀랍게도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후로 습관처럼 걷고 또 걷고 도저히 어떻게 안될 것 같을 땐 나도 앤처럼 내달리고 만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앤한테 “쟤 왜 또 뛰어” 말할 군번이 못된다.)



내 감정이 손쓸 수 없이 부풀어올라 자아를 덮칠 때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나’를 찾아야 할 때

당신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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