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빨간 머리 앤 이다.
스트리밍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나의 새벽을 앤에게 바쳤다.
그녀 때문에 매일 밤 질질 짜다가도 적재적소에 움트는 극 중 인물들의 다정함에 희망을 엿보는데..
그러다 보면 이제는 멀어져버린 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매회차를 줄기차게 스트리밍 하면서 유독 눈에 걸리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어느새 화면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그렇다.
앤은 뛴다.
아니 정확하게 뛰쳐나간다.. 는 표현이 맞겠다.
기쁠 때도 속상할 때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내달린다
농장의 볏더미 속으로, 숲 속으로, 자신의 침대 속으로... 그리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눈물을 찍어낸다.
그녀는 왜 뛰쳐나갈까?
(제작자가 아니기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자꾸만 ‘걷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닮은 듯하다.
감정의 모양과 크기가 자신을 압도할 정도로 가득해서 어떤 식으로든 ‘치유’ 혹은 ‘해소’가 필요한 것이다.
한없이 내 달리다 보면 부풀었던 감정만큼이나 심장박동도 요란해지는데
그때 느끼는 완전한 슬픔이나 기쁨을 나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지나, 몸과 마음이 (보통의) 정상범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치유’나 ‘해소’의 과정이 되는 게 아닐까
또 내달리기 같은 건 세상과 나, 둘만 완벽하게 남겨지는 체험이 되므로
앤처럼 감정이 풍부한 소녀에게는 잘 들어맞는 도피처이자 은신처가 되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한 달간 머무를 무렵,
목장 시작점에서부터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던 기억이 있다.
심장이 8비트 유로댄스를 추고 세상이 2배속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때 숨을 크게 내쉬었던 건 호흡이 가빠져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을 눌러서, 숨으로나마 뱉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놀랍게도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후로 습관처럼 걷고 또 걷고 도저히 어떻게 안될 것 같을 땐 나도 앤처럼 내달리고 만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앤한테 “쟤 왜 또 뛰어” 말할 군번이 못된다.)
내 감정이 손쓸 수 없이 부풀어올라 자아를 덮칠 때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나’를 찾아야 할 때
당신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