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안녕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노래가 역주행했을 때,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 여러번 들었지만 블랙홀 관련 노래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인터스텔라'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사건의 지평선이 블랙홀과 관련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았으며,
알게 된 후 노래를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럼 사건의 지평선은 무엇인가?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경계면을 뜻한다. 즉,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밖에서는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다.
대표적인 예시가 블랙홀이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를 의미하며, 이 경계를 넘어서면 중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으며, 어떠한 정보도 외부 관찰자에게 전달될 수 없다.
우리는 블랙홀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완벽한 중력방정식의 해결을 위해서 블랙홀 내부의 중력 데이터가 필요한데,
외부에서는 알아낼 길이 없어서 쿠퍼가 직접 들어갔으니 말이다.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에겐 우리가 지금 일순위야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둔 것 같지만
<윤하 '사건의 지평선' 노래 중>
이를 가수 윤하는 이별에 비유했다.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서로 관측이 불가능한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이별에 비유한 것이다. (가수 윤하가 출연한 BODA 유튜브 참고)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둔 것 같지만'
이별을 앞둔 연인들은 보통 현실을 맞닥뜨리기 어려워한다.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만, 애써 핑계를 대고 외면한거나 미룬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해결하는 것이 일순위라고 말하면서
이별이라는 힘든 현실을 마주보려 하고 있다.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윤하 '사건의 지평선' 노래 중>
아직 그대의 목소리가 맴돌고, 그 사람과 함께 있던 따뜻한 공기가 기억 속에 남아있어
끝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자신 없지만 이별을 마주하는 모습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윤하 '사건의 지평선' 노래 중>
별은 최후를 맞이할 때 초신성 폭발 이후 자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어 블랙홀이 된다(저번 블랙홀 곡 참고).
블랙홀은 사라진 별의 자리이며,
초신성 폭발할 때 자신의 잔해를 우주에 뿌리기 때문에 아스라이 하얀 빛을 남긴다.
별이 초신성 폭발 이후 바로 뿅! 블랙홀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별한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을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억을 한동안 꺼내본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윤하 '사건의 지평선' 노래 중>
어떤 사람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로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블랙홀에 들어가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한다면, 그 사람의 시계는 블랙홀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블랙홀은 극도로 강력한 중력으로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밖의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사건의 지평선 코앞에서 멈춰버리며, 다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코스모스 책 참고)
우리의 이별 역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별 후에도 우리의 시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별한 사람과의 추억이 떠오를 때, 몇 년이 지나도 사람은 늘 이별한 그 때에 멈춰있다.
그 모습 그대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간 것처럼.
코스모스 책을 읽고 사건의 지평선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블랙홀과 이별을 정말 찰떡같이 비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끝이라는 것은 알지만 애써 외면하는 모습, 한동안은 추억을 꺼내드는 모습, 이별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습 등 이별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과거 이별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남편 미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이별을 분노의 대상, 슬픔의 대상으로 묘사하기 보다 그 시절 나에게 좋은 추억과 기억을 남겨준 것으로 고마워하며 '잘 살아, 나도 잘 살게' 라며 산뜻하게 이별하는 가사를 보니, 썩 유쾌하지 않았던 이별을 다른 각도로도 바라보게 된다.
이별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해주며,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준 것은 틀림없다.
이 과정들이 있었기에 지금 남편이 나랑 잘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소중함도 더 와닿는 것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티격태격했는데, 소중함을 곱씹으며 좀 봐줘야겠다 하하
https://www.youtube.com/watch?v=BBdC1rl5sKY&list=RDBBdC1rl5sKY&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