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피에로는 왜 엘파바와 사랑에 빠졌는가

춤처럼 흘러가던 삶이 멈추는 순간

by 도그앤미

7년 전, 런던 여행에서 우연히 선택했던 첫 뮤지컬이 ‘위키드’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여행 일정의 절반을 취소해버렸다.
그 감정의 여파로 마틸다, 오페라의 유령, 라이언 킹...

마치 공연이라는 세계에 홀린 사람처럼 무대만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키드 1막 마지막에 울려 퍼졌던 Defying Gravity만큼 압도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7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붙잡는 노래는 전혀 다른 곡이다.

바로 Dancing Through Life.


그는 철없는 왕자였다.

영화 속 피에로. 출처: universal pictures

피에로는 처음부터 ‘철없는 왕자’처럼 등장한다.
학교는 몇 번이나 때려치우고, 다른 사람들에게조차 “그냥 재미있게 살라”고 말한다.


글린다와의 연애도 깊은 단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잘생겼고, 너는 예쁘니 우리 한 번 만나볼까?” 그 정도의 가벼움이 흐른다.


그는 인생을 춤추듯 살자고 말한다.
생각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재미있게.
그게 그의 인생 철학이었다.


하지만 사자를 구하던 밤, 무언가가 달라졌다.

모두가 잠들던 순간, 피에로만 눈을 떴다.
그리고 엘파바를 따라 사자를 구하러 나섰다.


그 밤 이후 피에로의 표정에는 이전에 없던 감정이 번져 있었다.
가벼움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딘가 깊고 어두운 고민이 스며든 얼굴이었다.


그 변화는 영화 2편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약혼식을 발표하는 순간, 피에로는 더 이상 행복한 왕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편하고, 고민하고, 어딘가 멀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결국 그는 엘파바와 함께 도망가겠다고 말한다.


‘도망’이라는 단어보다 ‘선택’이라는 말이 더 맞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인생을 가볍게 흘려보내자던 그는 왜 엘파바와 함께하는 험난한 길을 택했을까?


Dancing Through Life - 그의 자기최면

Dancing Through Life의 한 장면 - 출처: universal pictures

나는 그 답이 바로 Dancing Through Life에 있다고 느낀다.

그 노래는 피에로의 인생관이라기보다, 그가 스스로에게 건 최면에 가깝다.

깊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책임지면 무겁고, 관계가 깊어지면 상처받는다.


그래서 그는 가벼움을 선택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어도,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파바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위하고, 책임지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서 오는 그 묵직한 무게.

도망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

그가 평생 회피해온 진심의 무게를, 엘파바는 태연히 감당하고 있었다.

피에로는 그 진심에 끌렸다.


피에로는 엘파바에게 “You’re beautiful”이라고 말한다.
평생 초록색 피부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엘바파가 “거짓말 하지 말아요”라고 말하자,
피에로는 이렇게 답한다.

“You’ve got me seeing through different eyes.”
(너 때문에 내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겉모습’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용기와 진심으로 바라본 것이다.


왜 이 노래가 7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흔들었을까

요즘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종종 Dancing Through Life를 듣는다.

그 노래는 피에로가 자신에게 걸었던 최면처럼,

“괜찮아, 조금은 가볍게 살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

평소 걱정도 많고, 마음이 자주 무거워지는 나에게 이 노래는 잠시 숨 쉴 틈이 된다.


생각해보면 피에로는 정말 이 노래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엘파바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은 결핍이 충족될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지지 못한 무엇’을 상대가 가지고 있을 때 강하게 끌린다.
관계 심리학에서는 이를 보완적 끌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로의 빈틈과 단단함이 맞물리는 순간, 마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평생 허술하게 살아온 나는 남편의 똑 부러진 모습에 끌렸고,
평생 단단하게 살아온 남편은 내가 가진 순수함이 좋았다고 했다.
서로의 결핍을 조용히 맞춰주면서, 관계는 조금씩 모양을 갖춰갔다.


재미있는 건,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 단순한 ‘끌림’을 넘어
나 자신을 보는 관점까지 함께 바뀐다는 사실이다.
내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부드럽게 감싸줄 때, 나는 나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랑은 조용히 시작된다.


피에로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가볍게 살아오며 느끼던 공허함은
엘파바의 ‘책임지고, 도망치지 않는 단단함’을 만나며 흔들렸다.
그는 그녀를 통해,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피에로가 엘파바에게 끌린 건, 그녀가 단지 특별해서가 아니라
피에로의 결핍을 건드리고, 채워주고, 바꿔준 존재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존재를 만났을 때

비로소 사랑에 빠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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