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우정, 파국보다 성장을 씁쓸한 현실에서 보여주다
위키드 영화를 보고 나오자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현실이었으면 완전 막장이지! 약혼해놓고 저렇게 도망가면 고소장 날아오는 전개야.”
맞는 말이었다.
전개만 놓고 보면 위키드는 분명 막장 요소로 가득하다.
약혼, 오해, 삼각관계, 도망, 갈등…
요소만 보면 일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위키드는 전혀 막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이 남고, 마음 한가운데서 따뜻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올라온다.
왜일까?
겉으로만 보면 두 여자의 질투와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 흐르는 진짜 감정선은 전혀 다르다.
글린다는 모두의 기대에 맞춰 살던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되며,
피에로는 가벼움 뒤에 숨겨둔 진짜 자신을 발견하며,
엘파바는 악의 선전(Propaganda)에 맞서 싸우면서도 결국 세상이 주입한 오해를 떠나 자기 진실을 선택한다.
세상은 끝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엘파바는 그 시선 속에 머물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정의와 진심을 선택하며 그 세계를 조용히 떠난다.
이처럼 위키드는 남자 하나로 친구끼리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진실·정체성·해방의 이야기에 가깝다.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두 여성의 갈등은 훨씬 자극적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키드에서 중심축은 언제나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다.
둘은 서로를 질투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한다.
엘파바는 세상이 오해해도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떠나고,
글린다는 그 진실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즈에 남아 평화를 선택한다.
겉으로 보면 다른 길이지만, 실은 서로를 위한 결말이다.
사랑보다 우정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보기 드문데,
위키드는 그 희귀한 구조를 가장 아름답게 완성해낸다.
위키드의 음악은 감정의 언어다.
이야기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그 감정의 깊이를 음악이 먼저 받아 안는다.
Defying Gravity는 자기를 억압하던 세계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해방의 선언이자,
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저항의 선언을 보여준다.
No Good Deed는 선전과 왜곡에 맞서 싸우다가 고통만 남게 되는 엘파바의 절망과 고독을 드러낸다.
For Good은 갈등 끝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우정이라는 감정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조용한 결말을 담아낸다.
음악은 갈등을 부드럽게 녹여내며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삼각관계’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보게 된다.
현실에서는 삼각관계가
대개 분노 → 배신 → 절교 → 상처로 끝난다.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하지만 위키드에서 갈등은 세 인물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글린다는 가식의 무게를 벗고 ‘진짜 나’를 찾아가고,
엘파바는 오해와 선전 속에서도 자신의 정의를 지키며,
피에로는 가벼움에서 진심으로 건너온다.
갈등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위키드는 그 이면에서 아주 조용하게 현실의 잔혹함을 말한다.
대중은 끝까지 진실을 모르고, 권력이 만든 선전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엘파바가 살아남았다는 진실도, 그녀가 지켜낸 정의도
세상은 끝내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냉혹한 건,
엘파바가 이 진실을 위해 거의 온전히 혼자 싸워야 했다는 점이다.
세상의 오해와 공포, 권력의 선전 앞에서 그녀의 투쟁은 늘 고독했고,
그 외로움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는 현실의 가장 아픈 얼굴이다.
위키드는 성장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진실이 더디고 고독하게 전진하는 순간의 절절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위키드는 막장이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로 남는다.
막장은 상처만 남기지만 위키드는 변화와 성찰을 남긴다.
겉으로는 자극적인 갈등이지만 그 밑에서는 서로를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흐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막장의 구조를 보면서도 막장을 본 것처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위키드는 아주 조용하게, 성장 속에 섞여 있는 현실의 씁쓸함도 잊지 않는다.
진실이 모두에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 누군가는 끝까지 오해받은 채 떠나야 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변하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고, 둘은 서로의 삶에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막장이 아니라, 씁쓸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스치는 ‘성장’을 보고 나온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성장은 개인을 바꾸지만, 세상은 끝내 바뀌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 변화는, 그 개인에게는 충분히 값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