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이 모여 만든다
세계는 흔히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나뉜다.
거시세계는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되는 세계이고,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거시세계와 카오스
거시세계는 오랫동안 '현재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우주관으로 이해되어 왔다.
세기의 천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우주는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믿었다.
뉴턴의 방정식만 놓고 보면 세상은 충분히 예측 가능해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현실의 거시세계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드는 카오스(혼돈)의 세계다.
법칙 자체는 결정론적인데, 현실 자체는 너무 복잡해서 예측이 무너진다.
공기의 흐름, 온도, 습도, 어디선가 날아온 곤충 하나까지.
변수는 끝없이 늘어나고, 그 모든 변수의 초기 조건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거시세계는 이론적으로는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늘 예측이 어긋나는 세계가 된다.
미시세계와 확률
그렇다면 미시세계는 어떨까?
미시세계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는 본질적으로 뿌연 세계다.
개별 입자는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어디에 있을 확률이 높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확률의 세계에서는 거시세계에서 보이는 카오스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입자 하나의 움직임을 불확실하지만,
그 확률을 기술하는 슈뢰딩거의 선형 방정식은 안정적인 수학적 질서를 따른다.
개별적으로는 알 수 없는 입자들이, 수조 개 모이면
그 집단은 일정한 확률의 분포를 형성한다.
과학자들은 입자 하나의 위치는 몰라도, 전자 구름의 확률적 지도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미시세계는 겉보기에는 더 불확실해 보이지만,
오히려 수학적으로는 더 우아한 질서를 드러낸다.
정리해보면 그렇다.
거시세계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카오스에 가로막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미시세계는 현재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확률의 분포를 이루게 될지는 수학적 질서로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나의 미래는 결정된 것인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모두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한다.
우주는 불확실하다.
거시세계는 결정론적 법칙으로 지배되지만 복잡성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미시세계는 애초에 확률로만 기술되도록 설계된 세계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금만 더 알면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묘한 강박과 찝찝함이 남는다.
마치 내가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해서 세상과 나의 미래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반면 미시세계는 말해준다.
입자의 위치는 신이 와도 정확히 맞힐 수 없다.
불확실함은 인간의 무능이 아니라, 우주의 본성이다.
우주가 그렇다면 나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확률이 모여 만든다.
입자 하나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수조 개의 입자가 모이면 예측 가능한 확률의 파동을 만든다.
그렇다면 인간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도 '착하다' '나쁘다' 로 단정하기엔 너무 많은 순간들이 있어 모호할 때가 많다.
나 역시 따뜻할 때도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일 때도 있다.
하나의 행동만으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행동과 마음이 쌓이면 우리는 점점 특정한 분포를 띄게 된다.
따뜻한 행동, 마음이 반복되면 내가 그런 사람으로 흘러갈 확률은 조금씩 높아진다.
요즘 경제 공부를 하며 느낀 것도 비슷하다.
공부할수록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살아남을 확률은 높일 수 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다고.
혹시 마음이 찝찝해진다면,
우리를 이루는 원자들처럼 우주는 원래 뿌연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도 좋다고.
대신, 오늘의 행동 하나, 마음 하나가 모여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지는 믿어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