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나 Aug 12. 2021

모르는 척

부부싸움의 날

너의 외조부모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무수히 싸웠다. 가장 최초의 기억도 두 사람의 부부싸움이고 가장 강렬한 기억도 그들의 싸움이고 나에게 불현듯 밀려오는 슬픔의 근원도 그들의 부부싸움 잔상에서 기인한다. 자주 그리고 맹렬하게, 나는 마지막을 상상했다. 그 마지막은 세상의 판이 깨지는 듯한 고통의 심정이다. 부모의 싸움은 아이에게 전쟁의 고통과 같은 강도라는 사실을 책을 보고 배웠다.


너의 외조부모, 나의 부모님은 지금은 싸우지 않는다.

이혼하지 않고 버틴 덕에 좋은 날이 왔다는 말을 마치 상을 받는 사람이 소감을 말하듯 자랑스럽게 한다.

그런 말을 들은 날에 나는 세상 믿을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배신감을 입는 동시에 그러므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나는 내 부모가 오손도손 사는 모습이 좋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안도를 갖고 싶었는데 일찍 가질 수는 없던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네 앞에서 네 아빠와 싸우지 않겠다 결심했다.

네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그랬다.

그래서 나는 여러번 져야했다.. 네 아빠한테 따질 말이 있어도 시작해버리면 싸우고 말 것 같아서 안하고 삼키느라 숨어서 많이 울었다.

이유는 단 하나, 전쟁이 다가오는 공포는 참으로 잔인하니까.


사실 어제와 오늘 29시간 가량 우리는 냉전 상태였었다.

우리 부부가 만드는 대화의 공백을 네가 느끼지 못하도록 너에게 말을 많이 시켰다.

궁금하지도 않은 너의 친구들에 대해서 물었고, 알고 있는 걸 다시 물었고, 밥은 오래 먹지 못했고, 네 아빠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할 말만 주고 받았다.

나는 네가 정말 모르기 때문에 늘 했던대로 희한하고도 우스운 표정을 짓고. 한숨 나오고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짓을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 내가 예전에 다섯살 때 말이야.”

“뭐, 왜,”

“배가 안고픈데 배가 고프다고 한 적이 있었어.”

“… …”

“엄마가 화 나서, 아빠한테 화가 나서 운전해서 나가려고 했었거든 그날 내가 엄마가 안 나갔으면 좋겠는거야 그래서 생각한 말이, 배가 고프다는거였어. 엄마가 나 밥 줘야하니까 못나갈거라고… …”

“… …”

“… … “

“그래서, 그날 결국 내가 나갔니?”

“아니, 안나갔어 내가 배가고프다고 하니까”

“그랬어… ..”

“엄마, 나 “

“뭐,”

“지금 배 안고픈데 앉아 있는거야”


너는 때때로 겨울처럼 나를 못 살게 하고, 다시 봄처럼 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