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추는 딸을 지지하는 엄마라고 자부했습니다
취향에 딱 맞는 드라마를 만났다. tvN에서 방영하는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송강이라는 멋진 배우와 내 아버지의 안부를 궁금하게 만드는 박인환님이 만나 발레를 하는 드라마다.
얼마 전 칠순 잔치를 한 심덕출(배우 박인환 역)은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하고 싶었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역사에서 발레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이라서 그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마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 거리감에 대해서 모르지 않을 것이고 특히 남자에게는 발레라는 행위가 '남사스러운' 짓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더 어려웠을 것이다.
칠순 노인이 발레를 배워보겠다고 찾아왔을 때 그의 발레 선생이 되는 채록(배우 송강) 또한 처음엔 말 같지 않은 소리라 여기며 진지하게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의 열정을 알게 되었을 때 묻는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발레가 하고 싶어요?"
덕출은 발레에 대한 대단한 각오를 보여주지도 않고, 그가 평생 숨겨왔던 열정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멀리 시선을 두며 잔잔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죽기 전에 한번만 날아오르고 싶어서."
그래서 덕출이 날아오르고 싶다 말할 때 나는 상상했다. 그가 그랑제테(Grand Jete, 발레에서 한쪽 다리를 던져 도약한 후 공중에서 일자로 다리를 크게 펼치는 동작)를 하게 되는 모습을. 리얼리티 충만한 이 드라마에서 덕출이 그랑제테를 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을 이미 그 모습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출이 진짜 발레리노가 되지 못할 것임에도 그 도약을 상상하게 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오랜 시간 가슴에 품었던 소망을 구현하려고 의지를 품었을 때 이미 게임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나는 춤을 출 때 살아있다고 느껴"
나에게는 열 살 딸 아이가 있다. 내가 사는 이곳 호주에서 네 살 때 발레를 시작했으므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발레를 하고 산 셈이다. 처음에는 놀이터에 가듯 댄스 스튜디오를 다녔다. 나비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색으로 도배하여 다니는 일은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발레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어느 날 선전포고 같은 말을 했다. "춤을 출 때 살아 있다고 느껴..." 그 말을 하는 아이를 볼 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벌써 이렇게 컸어, 우리 딸.'
나는 엄마로서 아이 인생의 가장 큰 조력자로서 아이의 발언을 존중해주기 위해 발레를 더 많이 시켜주었다. 원하는 만큼 발레 학원에 가게 했고 집에 발레바(Bar)도 마련해 주었고 발레 연습을 할 공간을 만드느라 집안 가구 배치도 다시 해야 했다.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 부모들에게 잘한다고 칭찬 받으며 날로 성장했고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발레 레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땀이 뻘뻘 흐를 만큼 연습을 하고 나서야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대견했고 기특했다.
또한 나는 아이에게 공부에 목숨 걸지 않는 쿨한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바를 순수하게 지지하는 보기 드문 엄마라고 자부했으며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가 적성을 일찍 찾았으니 좋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초,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활액낭염이었다. 왼쪽 무릎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고 아이가 걸을 때 왼쪽으로 힘을 주지 못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잘 생기지 않는 염증이라 했다.
원인은 단순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어린 나이라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권하지는 않는 대신 6주를 쉬면 나을 수 있겠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이는 그 즉시 모든 레슨과 연습을 중단해야만 했다.
활액낭염은 발레를 하는 무용수들에게 드물지 않게 찾아오는 병명이었고 반복되는 부상으로 고통 받는 무용수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 <나빌레라>의 채록이 역시 만성으로 보이는 무릎 통증을 가지고 있다. 평생 부상 없이 발레를 하는 무용수들은 드물다는 것과 반복되는 부상과 고질적인 통증으로 무용수 생활을 일찍 마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아이가 발레를 쉬는 4주, 내가 알게 된 것
아이가 발레를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4주를 넘어가고 있다. 아이의 열 살 인생에 춤을 추지 않는 모습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보지 않고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는 열 살 아이답게 다른 즐거움을 찾아서 지내고 있다. 레고 박스를 헐었고 넷플릭스를 보느라 꼼짝 않고 몇 시간씩 앉아 있기도 하고 눈이 풀릴 때까지 로블록스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다. 몸이 굳어버릴텐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5월에 대회가 있는데 과연 참가할 수 있을까. 살이 찌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발레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속으로만 삭히지 않고 무시로 입 밖으로 꺼내는 일도 다반사다. 스트레칭은 안 할 거니? 대회 나갈 안무를 까먹은 건 아니지? 너 지금 뭐하니? 내가 거칠게 몰아붙일 때마다 아이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쉬어야 낫지!"
나는 공부를 잘하는 인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적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존중하며 키운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가 부상을 입고 초조해 하는 나를 직면하자 발레를 해서 성공 시키겠다는 내 안의 욕망을 본 것이다.
나는 아이가 발레리나로서 크게 성공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아이의 행복이라 믿었기에 나의 욕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의 인생을 이미 결정 지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어쩌면 발레를 다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사실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여태 그 아이의 발레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것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머릿속에서 계산을 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발레리나로 키우기 위해 작전을 짜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고백하건대 나는 덕출의 그랑제테를 상상했던 것처럼 내 아이가 그 동작을 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그려 보았다. 아이의 키가 자라고 기술이 늘면 그렇게 날아오를 것이라 상상하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디자인하여 아이를 구속한 다른 그림에 불과한 것을 왜 이제 알았을까.
덕출을 향한 나의 응원은 순수했다. 가장 원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결심은 하지만 '하기'는 쉽지 않다. 인생에서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란 언제나 다른 양태로 서 있는 법이니까. 칠순의 어르신은 나보다 그것을 더 잘 알 것이다.
덕출이 노인이기에, 따라서 그가 발레리노가 되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그의 시도만으로도 높이 샀던 것일까.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응원은 뜨거운 것을 간직하고 살아온 당신의 마음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것을 잃지 않고 살아준 자세를 향한 존경이었다. 밖에서 보았을 땐 험하고 고단한 인생이었겠으나 알맹이는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보듬은 칠십년이라 생각되어 넘치게 아름다웠다.
딸 아이에게 발레는 자신의 열 살 인생을 자신답게 꾸려가는 도구였을 것이다. 아이는 그 안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행복을 만끽했다. 열심히 해왔고 또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부상은 또 찾아올지 모르고 아이는 끝내 발레리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수도 없이 아이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상상하고 꿈꿀테지만 아이의 '나빌레라'는 꼭 그랑제테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가 발레를 하지 못하고 쉬는 이 시간, 나는 덕출의 '나빌레라'를 보며 딸 아이를 향해 건네는 응원의 마음을 되돌린다. 나의 응원은 가장 순수한 알맹이어야 할 것이다. 높게 뛰어오르는 발레리나를 향한 환호가 아니라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너를 존중하며 너 답게 살기를 바라는 응원이기를.
** 4월 7일자 오마이뉴스에 기고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