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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Aug 09. 2023

날것들의 공간

  응급실은 날것들의 공간이다. 응급실의 도착한 환자들은 대부분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환자,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어있는 환자, 여기저기 흙투성이가 된 환자, 대소변을 본채로 실려온 환자, 구토를 쏟아내며 들어오는 환자.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119 구급대에 실려서 오지만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응급 처치만 받고 응급실에 도착하기 때문에 응급실에 있는 의료진들은 이러한 상황을 모두 감내해야 한다. 한 번은 술에 취해 얼굴이며 손에 굳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환자를 닦아주다가 '내가 말끔한 환자들을 보는 과를 택했다면 이런 환자들은 보지 않았을 텐데...'는 하는 생각이 나서 속으로 울컥 마음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서도 마음이 힘들어 예배 시간에 교회에 앉아 있다가 나는 왜 술 취한 환자, 피가 여기저기 묻어있고 냄새나는 환자들을 보아야 하는 것인지 나 자신의 처치가 처량하게 느껴질 때쯤, 내 마음속에 그것이 응급의학과 의사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런 환자들의 피를 닦아주는 사람이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고 나의 일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누구나 그런 환자는 보아야 하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죽음의 날것도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는 죽음을 보았다.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를 쓰는 것은 반복되는 업무이지만 아직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매 순간마다 느끼는 정신적인 부담감은 그대로이다.

  사람은 모두 한 목숨이지만 죽음에는 받아들이기 쉬운 죽음과 어려운 죽음이 있다. 고령의 노인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있는 중에 임종하였다면 나도 검안을 할 때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환자를 검안해야 하는 경우에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죽음의 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응급실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날것을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외상이 드러나있거나 목에  줄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응급실에 이송된다.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나 부패가 시작된 채로 발견된 경우에는 차마 응급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운구차 안에서 검안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끔찍한 모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아직도 대면하고 싶지 않다. 고인의 표정을 보면 왠지 죽음을 맞는 순간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검안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인의 얼굴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억지로 검안을 마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나도 한 목숨이고 저도 한 목숨인데 나는 왜 누군가의 죽음을 선고하고 있는 것인지 묘한 기분이 들고 무기력해진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환자들도 그렇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환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목을 맨 한 젊은 여성을 검안을 한 적이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부모는 울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데 아마도 환자도 가족들도 오랫동안 시달려왔을 것 같았다. 그 아파트는 우리 동네 있는 아파트였다. 집에 와서 보니 우리 집 부엌에서 그 아파트의 그 동이 바로 보였다. 언제 한번 오다가다 한번 마주쳤을 수도 있는데 알았다면 말이라도 한번 걸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집에 있다가 그녀가 옥상에서 목 매려는 것을 보았다면 달려가서 말렸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날것을 대면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은 지옥보다 나을 것이 없고 인생은 소망이 없는 비극이라는 편견에 사로 잡히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을 오래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나도 이렇게 마음이 지치는데 하물며 현장에서 최초로 상황을 대면해야 하는 경찰관이나 구급대원들은 무슨 말을 더하랴. 이들은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의 모든 비참함의 날것을 지고 가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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