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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Jun 29. 2023

제가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보호자도 없고 모텔에서 장기투숙 중인 50대 남자 환자가 3일 전부터 배가 아프고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며 119 구급대에 실려 응급실로 내원했다. 위생이 안 좋아 보이고 속옷 차림에 덮고 있던 이불까지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을 보니 급하게 구급대를 부른 것 같았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어 간경화를 가진 알코올중독자인가 하여 음주 여부를 물어봤지만 술은 안 마신다고 하였다. 가지고 있는 짐을 다 가지고 왔는지 가득 찬 가방 두 개가 옆 침상에 놓여 있었다.

  검사해 보니 pH 7.1의 대사성 산증이 있었고 신장 기능을 나타내는 크레아티닌 수치는 11mg/dL로 많이 올라 있었다. 염증 수치도 높고 복부 CT를 보니 장마비 소견도 보였다. 소변도 거의 나오지 않아 장마비로 인해 탈수가 생기고 이 때문에 급성 신부전이 온 것이 같았다. 이런 환자는 응급 투석이나 신대체요법을 해야 할 수도 있어 급하게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했다.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신부전 때문에 투석을 하셔야 할 수도 있어서 큰 병원으로 가셔야 돼요."

  "제가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집에 그냥 가셨다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지금 바로 큰 병원으로 가셔야 돼요."

  "제가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무슨 준비요?"

  "돈이 준비가 안 되었어요."

  "비용은... 따로 해결하면 돼요. 큰 병원으로 바로 가셔야 돼요."

  "알겠습니다..."


  이 환자는 하루 이틀만 늦었더라면 의식이 없거나 심장이 멈춘 채로 응급실에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환자는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환자는 평생 돈 걱정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가족들도 다 떠나고 모텔에서 살면서도 가진 것은 가득 채운 가방 두 개뿐. 그는 허름한 모텔방에서 부푼 배를 붙잡고 혼자 참고 참다가 최후의 몸부림으로 119 구급대에 구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돈 걱정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의학의 발전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지만 그만큼 수많은 경제적 비용이 필요했다. 병원 복도에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모토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인도주의적으로 우리는 돈보다 생명을 우선해야 하지만 그것이 의료의 지속성과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분야이든 적자인 곳은 지속될 수 없고 발전될 수 없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다르지 않다. 환자가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응급실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병원비 문제 앞에서 망설이던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내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이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환자의 병원비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나는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보내고 한숨을 돌렸지만 그가 그곳에 가서 치료를 잘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병원비 문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그의 걱정을 덜어 주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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