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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Jun 01. 2023

봄날의 해부학 실습

  본과 1학년은 의과대학 생활 중 가장 긴장이 되는 시기이다. 예과 2년 동안의 여유는 사라지고 쉴 새 없는 강의와 시험이 이어진다. 기초의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해부학 실습이다. 해부학 실습이 시작되는 봄날이 되면 실습실 주변에는 진한 포르말린 냄새로 뒤덮인다.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된 시신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포르말린으로 처리를 하는데 코를 찌르는 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마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 경험이다. 슬픔을 넘어선 긴장과 떨림은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와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부학 실습은 의대생들에게 자신들의 업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체득하게 해주는 첫 경험이다. 우리 학교의 해부학 실습실은 반지하에 있었다. 실습실로 내려가는 길은 고요하고 어두침침했다. 실습실에 들어 리는 조를 나누어  테이블에 앉았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해부학 교수님은 고인이 된 시신 기증자들의 뜻과 넋을 기리며 기도를 하셨다. 마침내 처음 시신을 마주할 때 나는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떨리고 무서웠다. 대부분 침착했지만 몇 여학우들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 학교의 병원에는 암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증자들은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노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생을 마치신 분들도 있었다. 저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 생의 무거움 앞에 실습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테이블에 누워 있는 고인과 나는 다른 것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미래,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나의 미래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시신 기증자들은 고인이 되어서도 의학의 발전을 위하고자 한 것이다. 의학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연장을 말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고인들은 고대하던 생명의 연장을 이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학교육을 위해 시신을 기증함으로써 인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뜻은 이룬 것이다. 숭고한 그 뜻 위에 의학이 이어져 가고 있고 나 또한 그 위에 서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해부학 실습실 주변에는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또 본과 1학년이 된 의대생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첫 해부학 실습을 마쳤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 그들이 의사 국시를 보고 또 시간이 지나 전문의가 되면 마음속에 살렸던 환자들과 못 살렸던 환자들이 하나, 둘 씩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해부학 실습실에서 만났던 그 고인의 얼굴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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