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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May 12. 2023

중환자실의 그 아저씨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중환자실에 있는 그 아저씨의 아침 채혈을 할 때부터 맥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과 같이 힘찬 맥이 아니라 약간 부대끼는 듯한 맥이었다.

  오후 3시,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채혈하려고 할 때 아저씨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간호실습학생이 적을 것을 가져다 주자 마치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재빠르게 '몸살이 나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흘려 적었다. 나는 '그래서 채혈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레지던트의 오더만 받아서 하고 있던 나는 아저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후 5시 정도가 되자 이윽고 아저씨의 심장이 멈추었다. 중환자실의 의사와 간호사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누구는 오전에 악수를 했다며 아쉬워하고 누구는 아저씨에게 화를 내었다며 미안해했다. 나도 콜을 받고 내려와서 심폐소생술 몇십 분을 같이 하였지만 아저씨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았다. 오후 5시 45분 사망 선고. 모든 것이 끝나자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중환자실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조용해졌다.

  아저씨에게도 가족이 있지 않았을까.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태에서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중환자실에서는 일반 병실처럼 가족들이 간병을 할 수가 없다. 이런 환자들은 종종 가족들 없이 임종을 맞이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유일한 사건인데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고인에게도 가족들에도 가혹하고 슬픈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절대로 병원에서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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