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ggy Poo Apr 25. 2023

죽은 이의 온도

차가움 혹은 뜨거움

  외할머니와는 추억이 별로 없다. 어렸을 적부터 외가보다 친가와 더 가깝게 지내서 그런가 보다. 외할머니는 약간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연로하셨지만 눈도 크고 피부도 하얗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삼촌과 우리 어머니, 이모는 외할머니 덕분에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외할머니는 그 시절, 말년의 어르신들이 그랬듯이 자식들의 집에 돌아가며 사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가게 뒷방에 허름하게 살던 우리 집에 잠깐 들르셨다. 할머니는 어두컴컴한 작은방에 누워계셨다. '외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웃으시면서 일어나 입고 계시던 스웨터(할머니들 말로 '쉐타')에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나에게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다른 자식들보다 조금 못 사는 첫째 딸의 아들이었던 내가 가엾게 보이셨을 것이다.

  의과대학 예과 2학년 따뜻했던 봄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나는 급하게 고향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할머니보다는 슬퍼할 어머니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자정이 넘어 할머니가 계셨던 외삼촌댁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거실 한가운데 조용히 누워계셨고 가족들은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옆에 앉아 기도를 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임종하셨다고 한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때였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처음이었고 장례도 처음이었다. 자식들이 많았고 몇 명은 지역에서 공무를 맡고 있어 조문객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다니며 심부름을 하고 예식 순서마다 찬송가를 열심히 불렀다.

  입관식 때였던 것 같다. 염을 하시는 분이 가족들을 모두 모아 돌아가며 할머니의 이마에 손을 얹게 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의 차례가 왔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새하얀 할머니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나는 할머니의 이마가 너무 차가워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티는 낼 수 없었다. 사람의 몸이 그렇게 차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현실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체온은 뇌에서 세포의 대사작용을 조절하여 유지된다. 만약 뇌가 망가지거나 혹은 원활히 대사작용을 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사람은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든 세포가 죽은 사람은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변의 온도에 평형을 맞추어 갈 것이다.

  죽은 이의 몸이 너무 뜨거워 놀랐던 적도 있다.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해의 한 여름이었다. 병원 입구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응급실 침대를 가지고 나가 환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언뜻 보아도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노숙인의 행색이었다. 심정지 된 상태여서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환자의 가슴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환자의 몸이 너무 뜨거워 화들짝 놀랐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 혼잣말을 하며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압박을 할수록 굵은 때가 벗겨져 나왔다. 몸 전체에 노랗게 황달기가 있는 것을 보니 간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심정지 상태인데 이미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면 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뇌가 죽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환자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왜 병원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입구에 쓰러져 있었을까. 아마도 몸이 좋지 않아 그나마 진료를 볼 수 있는 이 병원으로 오고 있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미처 병원 안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입구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그를 본 사람들은 노숙인 한 명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심장이 멈춘 채 몸이 뜨거워질 때까지 얼마간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인생은 왜 이렇게 망가졌는가. 왜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쳤는가.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내 손에는 그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잘 가요. 또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