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언어: 말에서 본질을 찾다
누구나 '일'에 대해 말한다. 일이 많거나 적은 사람도, 일을 하고 싶거나 하기 싫은 사람도, 일을 하는 사람이나 시키는 사람도, 일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도,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일을 말한다.
"씻는 거 너무 힘들어. (그래도 해야지, 안 씻으면 세균이...) 난 씻는 일이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거라구! (알아, 힘들지, 힘들구나,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싫어하는 일을 빨리 해 버려야...) 힘들어, 힘들다구! 왜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해? 좋아하는 일만 하면 안 돼? (그게 그러니까,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 아빠, 미워!"
중요한 질문이다. 왜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까? 어른이 된 우리도 다르지 않다. 늘 하는 고민이다. 왜 일을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대출을 받... 매달 이자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중요한 이유다. 많은 학자들이 경제적 보상(또는 압박감)을 하찮은 것, 지양해야 할 것으로 말하는데, 물론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이유다. 일단 먹고 살아야지.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경제적 안정이 전제되어야 심리적 안정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일의 의미, 가치, 즐거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돈, 즉 경제적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돈을 완전히 배제하고 일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일을 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좋아서 하는' 것이다.
"오빠, 내가 왜 좋아? (응? ;; 그냥) 그냥? (응, 그냥 좋아) 와아 성의 없다, 변했네, 변했어. (아니, 그게 아니고...) 됐어. 귀찮아? 말하기도 싫어? 그냥? (무슨 그런...) 됐어. 오빠, 미워!"
좋은 건, 그냥 좋은 거 아닌가. 특별히 이유를 찾지 않아도 그 자체가 좋은 게 진짜 좋은 것이다(내 맘을 왜 모르니? 평소에 잘해야 알지. 아!).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면, 더할 나위 없다. 일의 동기를 여섯 가지로 분석한 '모티브 스펙트럼(책 "무엇이 성과를 만드는가")'에서 최고의 동기로 말하는 것이 '일의 즐거움'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몰입하게 된다. 당연히 최고의 성과로 이어진다. 그러면 즐겁다. 몰입하게 된다. 좋은 성과를 낸다. 선순환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이 즐겁기가. 우리는 대부분 출근하기 싫지 않은가? 심지어 이미 출근했는데도, 출근하기 싫지 않은가 말이다. 출근하면서 동시에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게 정상이다. 월요병은 흔하지만 금요병은 잘 없다. 금요일이 되면 주말에 일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는 그런 증상, 빨리 월요일이 되어서 얼른 출근하고 일하고 싶어 호흡이 가빠지는 그런 증상, 드물지 않나? 일은, 하기 싫은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아 역시 그렇구나, 정상이구나, 그냥 이대로 살아야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은 짧다. 사람은 보통 30,000일 정도 산다고 한다(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많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필자는 17,000일 가까이 살았......(잠시만요, 눈물 좀 닦고 갈게요) 남은 날이 결코 많지 않다. 좋아하는 일만 하기에도 부족하다. 싫어하는 일만 하다 갈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왜 일을 해야 할까? 일은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일이란 무엇일까?
'일'이라는 말의 역사는 1447년,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비어천가는 1445년에 지어 1447년에 간행하였다(위키백과).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문헌이다. 그러니까 일이라는 말은 최소 600년은 더 된 말인 것이다. 글로 기록된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행위 자체(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동물이나 식물도 태어나서 먹이를 모으고 터전을 잡고 새끼를 기르고 먹이는 일을 해 왔다. 그렇게 따지면 일의 역사는 태곳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은 곧 생명의 역사인 것이다. 일은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일이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다.
책상 앞에 앉아 이마를 짚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에 형광등 불빛이 번지는 것을 바라보다 문득 손끝을 놀려 몇 자 적다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노려보기를 반복하는 것도, 현장에서 더운데 추위를 느끼고 추운데 더위를 느끼며 어떻게든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일이다. 자신의 숨소리 만을 들으며 골똘히 몰입하는 것도, 동료와 함께하며 눈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일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싫은 사람과 싫은 관계를 견디는 것도 일이다. 몸을 움직이든 머리를 쓰든 마음을 쓰든 다 같은 일이다. 경중을 따질 수 없다. 다 중하고 귀한 일이다.
'일정하다'는 '정해져 있고, 한결같으며, 규칙적이다'는 말이다. 일에는 일정한 시간, 즉 정해진 노동 시간이 있다. 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좋아하고 중요한 일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싫어하고 쓸데없는 일을 '쳐내는' 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측면으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터무니없는 업무 목표 설정 및 강요가 얼마나 부당한가, 일의 본질에 맞지 않는가도, 일의 정의에서 알 수 있다. 사전만 봐도 나오는 것을, 대체, 왜들, 모르시... 여기까지만 하겠다.
일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무엇을 이루는 것이다. 일을 함으로써 '뜻한 대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일을 통해 성장하거나 일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내적(직접) 동기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 적절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대가는 '일을 하고 그에 대한 값으로 받는 보수. 노력이나 희생을 통하여 얻게 되는 결과. 또는 일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하는 노력이나 희생'을 말한다. 일한 만큼 '꼭 알맞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외적(간접) 동기라고 한다. 흔히 내적 동기를 높여야 한다, 외적 동기는 오히려 성과를 낮추고 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외적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일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무지하고 잇속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의 정의에서, 이 둘은 대등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는 새의 양쪽 날개이다, 밥과 반찬이다, 조던과 피팬이다, 마음과 몸이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일의 목적에 부합하고 개인과 조직의 가치를 높이는 '무엇을 이룬다면' 우리는 '적절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