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왔더라도 꺼내지 마세요
지난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면 교사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지만,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말들이 있다. 세상에 다양한 교사가 있고 더 다양한 학부모가 있으니 대화 방식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사들로 꼽아봤다.
셋째,’아이가 전학가고 싶어해요.‘ 머릿속에서는 ’네, 언제쯤 전학 가나요?‘라는 솔직함 선수가 손을 번쩍 든다. 하지만 감독인 나는 난투극을 막기 위해 그 선수의 머리를 꾹 누르고 공감 선수를 내보낸다. ’아이고, 아이가 많이 속상한가 보네요.‘
하지만 이 ’전학 카드‘는 교사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다. 전입과 전출은 담임 교사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는 아이 막을 수 없고, 가는 아이는 더더욱 막을 수 없다. 냉정히 말해 내 업무폴더가 25개에서 24개가 된다는 데 눈물 흘리며 붙잡을 이유는 많지 않다. 물론 그만큼 아이의 고통을 강조하고 싶어한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 그렇게 말해도 성장을 도와야하는 책임자로서 아이가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게 먼저다. 이 대사를 들을 때면 사실 아프다기보다 심리적 거리감만 든다. 관리 못해서 아이 전학 보낸 교사로 낙인 찍으려는 걸까? 다음 학교에서도 못 지내면 또 전학보낼까?
괜히 우리 아이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이‘라고 말하지 말자. 하루라도 우리 반에 있으면 내 학생이이니 전학 간다고 해서 덜 신경쓰는 일은 없다. 반대로 끝까지 함께가는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해주자. 진심으로 고민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면 전학가겠어요.” 대신 “아이가 학교 가기 싫어할 정도로 힘들어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함께 의논하는 제스처를 취해주길 바란다.
넷째,‘교장실에 찾아갈거에요’, ‘교육청에 민원 넣을 거에요.’ 둘이 다르다는 분들도 있겠지만 느껴지는 의도는 같다. ‘윗사람한테 이를테니 잘해.’ 드라마 속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너 자꾸 이러면 집에 전화한다.”같은 대사인 걸까. 그 분은 교사들이 ’나랑 이렇게 실랑이할 바에 차라리 교장,교육청으로 처리하는 게 낫겠다.‘ 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는 걸 알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건 학부모 입장에서 교사가 미덥지 못한 상황일 거다. 세상에 있는 모든 교사가 정상적이진 않을 거다. 나쁘지 않은 교사라도 잘못 대처할 때가 있다. 그래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내 아이는 교장도,교육청도 아닌 담임교사가 가장 잘 안다. 교내에서 내 아이에게 가장 애정있는 사람도 담임교사다. 교장이나 교육청을 통해 얘기하면 교사가 더 정중해질 수는 있다. 아이와 얘기할 때보다는 교장과 교육청 장학사와 얘기할 때 더 조심은 할 거다. 하지만 더더욱 형식적일 거다. 부모가 바라는 건 “매뉴얼대로 이거,이거 다 했습니다. 됐죠?”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한 진심어린 교육 아닌가.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 그 교육을 해줄 당사자와 얘기해야 한다.
상담할 때 잊지 말자. 당신은 지금 아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른인 그 교실의 담임교사와 대화 중이다. 당신의 대화 예절이 곧 ’내 아이는 이런 사람 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라는 품격을 실시간으로 드러내는 일임을 잊지 말자.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였다. 우리 ’겁주기용 찌르기‘는 그만두자. 아이에게 필요한 건 ’긴장‘이 아닌 ’애정‘이 담긴 대화이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외부에서 압력이 가해지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이 나온다. 반발심이나 체념이다. 안타깝지만 학부모의 바람처럼 ’저 아이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나진 않는다. ’해달라면 다 해줘야 돼?‘나 ’해주고 쟤는 아예 건드리지 말아야겠다.‘의 생각이 든다. 당신의 나름 강력한 민원 덕에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손길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아이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상대가 먼저 친절하게 대해주면 없던 웃음도 나오지 않던가. 내 자녀가, 내 학생이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는 신뢰가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 줄 거다.
+작은 이야기 한 토막+
코로나19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던 시절이었다. 안경과 마스크가 합체해 한숨을 쉬면 김이 서렸다. 근엄하게 혼내야하는데 뿌연 안경이라니, 너무 찌질해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을 혼내기 전에는 안경을 벗곤 했다. 어느 봄날, 아이들 활동을 시켜놓고는 답답해 안경을 내려 놓았다. 교실을 돌아다니던 중 딴짓 하는 남학생을 하나 발견했다.
“너, 지금 뭐해?”
9살 짜리 꼬마가 뒤를 돌아보더니 헉하고 놀랬다.
“선생님, 제발 안경 써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그 작은 마시멜로우 손으로 열심히 빌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댔다.
“그럼 뭐가 달라져?”
“선생님 안경 벗을 때가 무섭잖아요.”
’내가 안경을 벗어서 화가 난 게 아니잖아.‘